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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관련 해설13
  등록자 : 빛을 향하여   날짜 : 2014.09.04   조회수 : 502   다운로드 :


문187:제가 이 사이트를 알게된지도 거의 8~9년이 다되어가네요. 그때는 외계인에 호기심이 많아서 어떻게 찾아오게된 사이트였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느낀 것은 내안에 부정적인 자아가 있는건지 아니면 특정 인물의 상술에 넘어간건지 부정적 견해가 듭니다. 밑에 글을 읽다가 로사리오 기도라는 것이 있어서 찾아봤는데, 읽어보고 든 느낌은 로사리오 기도가 과연 성모 마리아님이 알려준 메세지인가? 하는 의심이 샘솟습니다. 기도문을 독송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기도문 중에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불교에서 나오는 신들 이름이 약간 변형된 발음으로 나옵니다. 중간에 옴 라트마~ 훔 이런 말도 나오구요. 성모 마리아님이 특정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마지막으로 독송하고 모든 인류에게 고대 인도어 말을 하도록 메세지를 전했을까요? 불교적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 인위적으로 지어냈다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듭니다.

답: 어차피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 각자 자신입니다. 자신에게 그런 부정적 생각이 들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리란 누군가에게 억지로 믿으라고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로사리오도 자신의 가슴에 끌리면 하는 것이고, 안 끌리면 안하면 됩니다.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채널링 메시지든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맹신하지 않고, 가급적 비판적인 입장에서 늘 신중하게 검증한다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다만 한마디 하자면, 성모님의 메시지에 불교적 용어나 산스크리트어가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허위 메시지라고 추정하는 것은 좀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본래 하나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고, 오랜 세월에 걸쳐 내려오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여러 종교 속에 다양한 용어나 변형된 형태로 녹아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연 성모님 메시지라고 해서 거기 기독교식 용어나 표현만이 나와야 된다는 억지스러운 근거는 무엇인가요? 또 성모님이 단지 이슬람교나 힌두교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쪽이 전혀 진리가 아니라고 여긴다고 단정하는 점과 인도 성자가 남긴 글들 중에 성모 마리아나 불교의 신들을 거론한 부분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고 해서 그쪽이 마치 허위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인 것 같습니다.인도 성자들과 티벳 성자들이 남긴 전언들에서 기독교나 불교, 두 종교가 등장한 것을 못 봤다고 언급했는데, 그런 내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가난다의 자서전”이나 “티벳 성자를 찾아서” “초인생활” 같은 책들에서는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본질을 설명하고 성경구절이나 예수의 말씀을 인용 해석하고 있으며, 또 붓다나 “옴(Aum)" 만트라에 대해 일부 설명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그리고 이론적으로 산스크리트어 발음이 맞느냐, 약간 틀리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채널러가 메시지를 수신하는 과정이나 영어표기과정에서 약간 변형되거나 잘못 받아 적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로사리오 기도문이나 디크리에 담겨진 에너지의 진동일 것입니다. 최소한 6개월 정도는 열심히 해보고 나서 그때 마음이 정 내키지 않다면, 그만 두어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188 우연히 수면명상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책을 쓴 작가를 검색하게 되었고 지은이가 운영하는 요가. 수면 명상 이라는 카페를 알게 됐는데요. ‘청학 올리 싸만코’라는분이 운영하는곳인데 http://cafe.naver.com/divinemeditation 이고, 대강 둘러봤는데, 요가를 통한 명상 관련 같은데요. 배울만한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사이트 왼쪽에 -테오시스인가-라는 난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나름대로 레벨이되면 인가를 해주더군요. 처음에는 약간 이 대목에서 갸우뚱했는데요. 계속 글을 읽어보니까 시리우스의 김 건웅씨처럼 붓다가 되었다는 인가(認可)는 아니고 깨달음의 단계에 대한 일종의 인정하는 방식의 표현같네요. 이분은 고구려 시대의 무예인 ‘수진선학 비천선문도’를 가르치고 계신다 합니다. 천부경도 나오던데, 제가 문외한이라서 좀 어려운 무예처럼 생각되기도 하구요. 이분은 11월에 인도로 다시 떠나신다는데요. 운영자님은 이분 아시는지요? 운영자님은 예전에 여러가지 우리나라 선도공부도 하신 것으로 기억되는데요.잠깐 들러만 봤지만 ‘수진선학 비천선문도’라는 것은 내공과 외공이 상당히 높은 것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냥 무예가 아닌 듯합니다. 청학이라는 분은 이제껏 첨 들어본 분이라서 여러 가지로 운영자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운영자님도 한번 둘러 보신후 느낌 좀 알려 주세요. 답: 청학이란 작가분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이런 저런 평을 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에 <수면명상>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의견을 말하겠습니다.대략적으로 살펴보니 <수면명상>이란 것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파동의 형태로 녹음한 CD를 잠자는 동안 계속 들음으로써 주변 환경과 운명을 점차 바꿔나갈 수 있다는 원리로 생각됩니다. 원래 본인은 치열한 자기노력 없이 저절로 뭐가 된다는 식의 주장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 입장이긴 합니다만, 그런 원리가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왜냐하면 수면상태는 우리 인간의 잠재의식이 가장 활성화되는 상태이므로 잠자는 동안 그런 CD를 지속적으로 듣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실제로 잠재의식 속에 긍정적인 관념이 유입됨으로써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금방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의 잠재의식이 일부라도 변화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빨라도 100일, 길게는 6개월~1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런 CD를 장기간 듣는 방법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에 내 마음은 내가 스스로 바꾸려고만 한다면, 강한 의지로 언제든지 바꿀 수가 있습니다. 즉 그것은 매사를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보는 습성을 버리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조건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지요. 이렇게 마음상태가 바뀌면 점차 주변의 여건과 운명도 바뀝니다. 물론 이렇게 되는 것이 그리 간단하거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사 모든 것에 필히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히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수면명상> 같은 기법을 시험 삼아 한번 활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189 자연계의 질서와 우리 영혼의 진화에 관하여 설명해 주 세요.

답:좀 어려운 질문 같이 생각됩니다만, 내 개인적인 견해는 이러합니다. 지금의 자연 생태계가 약육강식 또는 적자생존에 따라 유지되고 있는 것은 불변의 자연법칙이 아니라, 한마디로 말해 지금의 세상이 “상극(相剋)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연계, 동물계만이 아니라 인간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그리고 지금의 세상이 상극세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지구상에 저급한 영혼들이 너무나 많이 태어나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인간들의 영성이 지극히 낮다보니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고 피해를 끼치는 일이 예사로 자행됩니다. 결과적으로 인간들 간에는 분열과 대립, 증오, 투쟁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살생, 육식을 당연시하는 풍토가 형성되어 있습니다.그런데 자연계라는 것은 곧 인간의식의 반영입니다. 즉 자연과 동물계는 인류 전체가 가진 의식(意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인간의 이기성과 공격성, 포악성,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그대로 투사되어 동물과 자연계 자체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지축이 기울어져 지구의 기후가 고르지 않고 극한(極寒), 극서(極暑) 지역이 존재하는 것, 또 기운이 조화롭지 못하고 늘 지진과 화산폭발, 홍수, 가뭄, 태풍, 등과 같은 자연재앙 등이 상존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구자체가 살아 있는 거대 생명체이기에 인간의 횡포와 학대, 오염, 착취로 인해 지구 자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가끔씩 그런 스트레스를 방출하고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해 천재지변의 형태로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또한 동물들이 서로를 잡아먹으며 생존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식의 영향 때문입니다. 인간세상의 약육강식이라는 비정한 원리는 최근에야 우리사회에서 사회문제화 되기 시작한 “갑(甲)의 횡포” 문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동물세계의 약육강식은 바로 이런 인간의 포악하고 저열한 심성(心性)이 그대로 투사되어 반영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극세상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상생세상”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상생(相生)하는 세상은 말 그대로 모든 생명이 서로를 해치거나 잡아먹으며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서로를 돕고 살리면서 사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이 바로 종교들에서 예언되었던 지상천국이요, 미륵용화세계요, 후천선경세계, 빛의 황금시대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지구보다 진화 발전된 5차원 이상의 외계문명에 해당되는 것이죠.이런 세상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의식이 변해야 하고, 보다 높은 단계로 상승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새로운 세계에 대해 말하기를, “늑대와 양이 함께 평화로이 누워있게 되는 세상[이사야 11:6~9]” 또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요, 모든 곳에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세상 [65:22~23]”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세상이 오면 동물의 심성 자체가 완전히 변하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즉 지금과 같은 동물의 공격성과 육식 본성이 사라지고 모든 동물들이 소처럼 온순하게 바뀌어 초식 위주의 상태로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거시적 차원에서 볼 때, 어찌 보면 이러한 지금의 상극세상도 영적진화 과정에서 거쳐 가는 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이것은 생명이 분열, 발달하는 초기단계에서 진화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환경은 강한 생명체만을 살아남게 하여 우수한 종(種)만을 진화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우주는 음과 양, 선과 악, 빛과 어둠 같은 대립적인 이원적 속성을 통해 다양한 진화의 실험을 주기적으로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자비와 사랑”은 영적으로 높이 진화된 존재들이 가진 특성이자 고유한 덕목(德目)입니다. 이것은 자기보다 나약한 자, 뒤떨어진 자를 도와주려는 이타적 속성이지요. 지금의 상극세상에서 다른 생명이나 타인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푼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생태계의 균형을 잃게 하거나 공멸에 처하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는 우주 삼라만상이 본래 하나이고 자타일여(自他一如)이므로 다른 존재를 돕는 것은 본질적으로 곧 자기를 위한 것인 동시에 전체의 진화에 기여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오히려 그것은 상극세상에서 더욱 필요한 속성인 동시에 가장 빛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문190: 은하문명에서 나온 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분명히 황금시대 은시대 청동시대 철기시대 휴지기 ㅡㅡ>다시 황금시대 등등 이렇게 전개되는 주기가 있습니다.

현 시대가 황금기를 바로 앞두고 있다고들 하는 분도 있구요.개인적으로는 현 시대의 모습을 보면 저 레무리아 아틀란타때의 막장 시대와 비슷함에도 최고신께서 그 비참한 때를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연착륙하는 느낌이강한데요. 모두가 의견이 분분하니 도대체 지금 무슨 시대인지 아주 혼란이 많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무슨 시대인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인간의 육안으로만 본다면 지금의 세상은 매우 탁하고 혼란스럽게 보입니다, 종교인들은 흔히 “말세”라고들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학생이 선생을 구타할 정도로 인간의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졌고, 또한 종교들마저도 타락하여 개인의 구원과 복락(福樂)을 구하는 저급한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만이 득세하여 돈벌이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무슨 짓이든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그러나 여명이 동터오기 전, 새벽의 어둠은 가장 깊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세상의 개막을 앞둔 과도기적 암흑기입니다. 만약 인류가 이 암흑기를 무사히 넘어간다면, 오래전부터 수많은 예언자들과 선지자들, 마스터들이 예언했듯이, 머지않아 새로운 차원의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앞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새로운 세상은 여러 가지 용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후천시대라 하든, 빛의 시대, 또는 황금시대라 하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은 시대적 섭리이고 예정된 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를 상위차원으로 상승시키려는 이 계획은 천상의 은총어린 결정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에는 그러한 새로운 세상과 시대의 개막을 돕기 위해 많은 빛의 영혼들이 태어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영혼들이 지구를 돕기 위해 와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만큼 이 지구라는 행성의 어둠이 깊고 진동주파수가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 자력(自力)만으로는 영적 상승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지요.한편 지금의 70억 인류 전체가 새로운 세상에 동참하여 넘어가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분리작용이 있을 것이고, 수준미달의 영혼들은 따로 격리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그렇다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새로운 세상이 자동적으로 열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육신을 쓴다는 것은 고등한 빛의 영혼들조차도 망각의 베일에 싸이게 만듭니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세상을 현재 장악하여 지배하고 있는 세력들은 자기들의 생존과 아젠다를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 발악과 함께 힘의 고삐를 더더욱 죄고 있는 상태입니다. 미래에 대한 천상의 기본적 비전과 시나리오는 세워져 있을지라도 세부적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빛의 영혼들이 현재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혼란과 파국이 심해질수도 있고, 반대로 완화될 수도 있습니다, 또 황금시대의 개막이 앞당겨질 수도, 무한정 지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빛의 영혼들의 깨어남과 건투를 빕니다.



문:191 운영자님께 올립니다. 지구에는 다양한 종교와 수행법이 있습니다. 만약 에베레스트산 정상이 대각한 자리라면 수많은 종교와 수행법들이 산 아래 동서남북과 수많은 방향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개인적 판단으로는 이곳 은하문명에서 출간된 책에서 가르치는 수행법이 가장 최신에 나온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일반적인 명상이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보편적 길이지만 이곳에서 나름대로 수행법이 한 두 가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있다면 과정은 어떻든 명상에 못지않고 신과합일 즉, 오는 황금시대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데 부족함이 없는 수행법이 있다면 안내 부탁드립니다.



답 :몇 년 전인가 유사한 질문에 이미 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래 되었고 하니 재정리해서 다시 한 번 더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과거 10여 년 전, 출판사를 시작하기 이전에 본인은 몇몇 수련법을 거쳐본 경험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늘 바쁜 출판사 일과 번역 또는 집필 등의 시간에 쫓기며 살다보니 사실 수행을 따로 할 시간이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간 여유를 갖고 수행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때로는 부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수행관(修行觀)을 여기서 잠시 피력한다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눈감고 앉아서 하는 명상이나 요가, 참선만이 꼭 수행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행은 특별히 변성된 의식상태를 체험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의 편협하고 저급한 자아인 에고를 넘어서서 신성 자체인 대아(大我), 진아(眞我) 또는 신아(神我)와 융합되는 데 있습니다. 아울러 이는 또한 우리의 미숙한 인간성을 점차 다듬어 나가 최종적인 인격완성이요, 인간완성에 이르는 길이기도 합니다.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단계로 들어서기 위해 먼저 필히 거쳐야 하는 과정은 우리의 카르마 청산과 업장소멸입니다. 그리고 소아(小我)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벗어나 반드시 전체와 빛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 있어야만 합니다. 아울러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천지만물과 부모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과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이 돼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 자체가 신성과 융합되기 전에 밟아야 하고 통과해야만 하는 주요 수행이고 시험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 속에서의 마음가짐 하나, 현실적인 태도나 노력 하나하나 자체를 다 수행으로 보아야지 특정의 포즈를 취하고 앉아 하는 테크닉만을 수행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무엇보다 차원상승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적어도 개인적 카르마의 51% 이상이 청산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이 과연 현생에서 어느 정도 업(業)을 청산하고, 또 어느 만큼의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쌓았는가를 한 번 겸허하게 돌아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업이 무겁고 공덕이 없는 사람은 수행 아무리 해보아야 절대 깨달음의 단계로 진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경에 보면, 부처님 설법내용에 공덕 쌓기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그토록 빈번하게 나오는 것입니다.그럼에도 우리나라 소위 영성인들이나 수행한다는 이들을 보면, 이런 사전단계를 무시하거나, 아예 모르거나, 또는 건너뛰어서 뭔가 성취해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는 전적인 영적무지이고 착각입니다.최근 우리 사회에는 ‘긍정의 힘’이니 ‘적극적 사고(思考)’니 해서 개인의 성공과 축복 및 자기계발 열풍이 높습니다. 물론 부정적 비관적 사고를 하는 것보다는 긍정하는 사고가 백번 나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인드는 나름대로 한계가 있으며, 진리의 깊은 부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혼자 열심히 수행해서 깨닫고 상승하겠다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발상은 내면적 수준에서 볼 때 자기계발에 매달려 있는 일반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외적 아이템이 약간 다르다는 것뿐이지요. 아마 지금도 불교의 선방(禪房)에서는 한 소식 해보겠다고 화두 잡고 앉아 하안거(夏安居) 수행에 열심히 정진하는 스님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구도의 열정 하나만은 칭찬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혼자 열심히 수행해서 깨달아 보겠다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발상 자체가 이미 미성숙한 것이고, 자기중심성, 이기성이라는 에고적인 마인드에 갇혀 있는 것임을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은하문명에서 출판한 여러 책들에서 그리스도나 붓다, 마이트레야, 성모 마리아와 같은 마스터들이 수행 이전에 무엇을 강조하는가를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어떤 정보들에는 무슨 무슨 수행법만 열심히 하면 차원상승이 되고 빛의 몸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그런 식의 주장이나 이론에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별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명백히 잘못 왜곡된 내용이고 허황된 착각들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꼭 무슨 명상법이나 수련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수행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수행을 하지 말라거나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필히 이타행, 보살행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과 때로는 외골수적인 수행은 오히려 에고를 더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상 만능주의나 수행 일변도의 환상에서 벗어나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 빛과 전체를 위한 봉사와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도 사람들이 눈을 좀 떴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이긴 하지만, 인터넷상에 아무 댓가 없이 번역해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번역봉사도 일종의 멋진 수행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사회의 음지에서 독거노인들이나 어려운 병자들을 돕고자 묵묵히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곤국가에 가서 봉사하거나, 그곳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뜨거운 땡볕 아래서 모금통 들고 길거리에서 모금하는 젊은이들도 있지요. 또 어딘가 좋은 일에 기부를 하고자 땀 흘려 막노동을 하거나 알바를 뛰는 보기 드문 이들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타인들과의 나눔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이런 이들은 누구보다 치열한 수행자들입니다. 이들도 눈감고 명상하고 있는 이들 몇 배 이상으로 신성을 향해 앞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내게는 책을 집필을 하거나 재정적으로 어렵지만 마스터들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출판하는 데 매달려 열심히 일하는 게 수행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수행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인가 전체의 깨어남을 위해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도 훌륭한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 수행에 관해 언급하자면, 엄밀히 말해 지금 단전호흡계통의 호흡수련이나 화두선(話頭禪) 같은 수행은 시대에 좀 안 맞는 수행법들입니다. 이런 방법들은 한 마디로 구시대적인 낡은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대가 바뀜에 따라 수행법도 새로 업데이트 되고,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가 지상에서 어떻게 해야 신성 또는 불성에 도달할 수 있는가는 이미 출판한 책들에 어느 정도 다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 해달라고 권고하고 있는 <로사리오 기도법>이나 텔로스인들과 그리스도가 가르치는 <보라색 화염 이용법>, 각종 <디크리> 등도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수행법들입니다. 더 이상 무슨 특별한 수행법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신성으로 가는 데 있어서 이 이외의 <특별비법>이나 <지름길>, 별다른 <단기속성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행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얼마나 실천하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사족을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만약 앞서 언급했던 우리가 거쳐야하고 밟아야 하는 과정들을 생략하거나 건너뛰어서 혹시라도 요행수로 상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시간낭비만 하거나, 반드시 좌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문192: 스포츠 게임도 카르마가 되는 것인지요?

답:지구상의 스포츠라는 것은 사실 인간의 강한 공격성과 호전성(好戰性)을 게임이라는 형태로 대신 발산시켜주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즉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서로 간의 제한적인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르는 방식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스포츠의 이런 대리 발산 기능은 과거 같으면 인간 사이의 적의(敵意)나 공격성으로 인해 국가간 인종간 부족간 유혈 전쟁이나 싸움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사태를 어느 정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스포츠가 어디까지나 공정한 규칙 준수를 통해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고, 또 그 결과에 깨끗이 쌍방이 승복하여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승자는 패자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형태로만 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 세상에서는 그런 이상적인 형태로 스포츠가 운영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경기에서 반칙이 빈발하고 외국의 축구경기에서 흔한 훌리건들의 난동 같은 사태에서 보듯이, 상대에 대한 극렬한 경쟁심과 적의, 공격성 때문에 폭력사태가 종종 나타납니다. 심지어는 어떤 형태로든 사망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지요.경기에서 이긴 승자는 환호하고 우월감으로 의기양양하지만, 패배한 쪽은 굴욕과 열등감,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가 스포츠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전쟁처럼 상대에 대해 더더욱 강한 증오심과 적의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카르마(業)가 됩니다. 어떤 행위가 카르마가 되고 안 되고는 꼭 외적 행위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앞서 언급했듯이 서로 경쟁하는 경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경기를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하냐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예컨대 어디까지나 게임을 한다는 가벼운 마음과 선의의 마음으로만 경쟁을 한다면, 스포츠는 서로 간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되고 때때로 인간들이 스포츠를 통해서도 업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스포츠 자체의 탓이 아니라, 의식(意識) 레벨이 낮은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참고로 인류사회보다 진화, 발전된 외계 문명권에서는 인간처럼 경쟁하는 스포츠 게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들과 같은 과도한 공격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문193 :임마누엘 탈무드가 있다고 해서 들었는데요1.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부활 않하셨나요?2.인도가서 인도여자랑 결혼해서 115세까지 살다 가셨나요?3.아담은 백인들의 조상인가요 전 인류의 조상이 아니었나요?



답: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과 사망, 그 이후의 부활여부를 둘러싸고 떠도는 여러 가지 설(說)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중 많은 것들이 교묘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끌어내려진 후 살아났고, 인도로 가서 결혼해 115세까지 살았다는 주장도 그중 한 가지입니다.내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님 계시서인 <예수 그리스도의 충격 메시지>와 <그리스도는 여러분 내면에서 탄생한다>에서 언급하는 내용을 신뢰하는 입장입니다.이 두 가지 책 내용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분명히 육체적으로 사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활하셨다는 것이죠. 인도에 가서 요가수행을 했던 예수님은 특수한 호흡법을 통해 가사상태로 들어갔다가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것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뜻이 아님을 알고 죽는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듯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난 것인데, 텔로스(3)권 내용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제6광선인 부활의 불꽃 에너지의 축적을 통해서였다고 합니다.그런데 예수님의 이 부활한 몸은 사실 우리의 육신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 몸은 이른바 “빛의 몸(Light Body)"으로서 우주인들의 몸과 같은 높은 진동의 반-에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빛의 몸은 노화하지 않으며, 진동을 떨어뜨리면 육체처럼 물질화되어 단단해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2,000년 전의 모든 생(生)은 사실상 미래의 우리 인류에게 일종의 시범을 보이기 위한 본보기적인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거듭나고 부활해서 새로운 불로불사의 빛의 몸의 단계로 진화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죠. 보다 깊은 내용은 앞서 언급한 책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의 아담과 이브에 관한 이야기는 최초의 인간에 관한 일종의 상징적인 설화로 보면 좋을 것입니다. 고대 레무리아 대륙에서 인류는 5가지 오색인종으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굳이 따진다면 5명의 아담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을 겁니다.



문194. 기독교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있습니다.그런데 불교 믿는 사람들은 정서상 그리고 오랜 믿음으로타종교에 관대한 사람은 희박합니다. 설사 타종교를 받아들인다해도 정서상 거리감이 있지요. 불교 믿는 사람들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디크리와 같은 디크리는 없나요? 예수그리스도(석가모니) 디크리(진언) 이렇게 대비할 수 있겠는데, 불교도들이 그리스도화(성불)할 수 있는 디크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운영자님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디크리에 불교 디크리와 기독교 디크리가 따로 있고, 예수님 디크리와 부처님 디크리가 다를 수가 없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진리는 모두 하나로 통하는 것이고, 거기에 그 어떤 분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럼에도 일반 중생들은 용어 하나에 매이고, 생각 하나에 매이며, 또 오래 젖어있던 습(習)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기존의 무지한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현재 영단의 여러 대사들로부터 오는 많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만, 그중 가장 많은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마스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이 현재 영단 내에서 “행성 그리스도”이자 <세계의 스승(World Teache)>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직책은 말 그대로 인류를 교화하고 인류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세계교사 역할입니다. 이런 연유로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과 메시지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습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세계의 스승>직을 맡기 이전 약 2,000년 동안 그 직책에 있었던 분은 다름 아닌 지금의 미륵부처님인 마이트레야(Maitreya) 대사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즉 미륵부처님이 현재의 “행성붓다” 직책에 오르기 전에는 “행성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입니다.또 한 가지는 이런 가르침들이 기독교 문화권의 서구의 채널러들을 통해 수신되다보니 어느 정도 그 용어가 기독교적 용어로 표현되어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부득이한 한계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용어 하나 하나에 매여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나오는 신(God)이라는 용어는 현재의 기독교들이 믿고 있는 여호와신이나 인격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한한 우주적 근원이나 에너지, 우주의식, 우주지성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이를 불교적 표현으로 바꾼다면, 개체불(個體佛)이 아닌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나 <대일여래(大日如來)>에 해당되는 것입니다.그럼에도 과연 진리를 향해 있는 진정한 구도자에게 굳이 “나는 불교인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라는 외적인 이름표나 구분이 필요할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외형적인 상(相)이나 용어, 언어에 매여 있다면, 또는 그런 틀을 갖춰야만 마음이 편한 상태에 있다면, 그 사람은 구도자가 아니라 그저 교리를 믿는 수준의 특정 종교 신자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용어에 얽매이지 말기 바랍니다. 즉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문:194 관세음보살은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나타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은하문명의 책에서 보듯이 반드시 여성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설명 부탁드립니다.

A:남성, 여성이라는 구분은 어디까지나 영혼이 3차원 물질계에 육화했을 때의 겉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보살과 부처와 같은 신성한 고차원의 존재들은 중생의 근기와 그때그때의 상황에 응해서 얼마든지 그 어떤 모습으로도 변모해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이를 불교에서“응화신(應化身)”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을 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 가깝게 보는 이유는 원래 영혼은 음양 에너지를 다 갖고 있습니다만, 관세음이 중생이라는 자식의 고통에 응해 자비심으로 구제하는 어머니와 같기 때문에 에너지적으로 여성 에너지를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모든 질문에 답하다>에서도 관세음보살 자신은 자기가 거대한 에너지이고 대령(大靈)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세음의 에너지가 고대에 중국의 "묘선"이라는 여성으로 육화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따라서 관세음보살이 과거 육화했을 때 여성의 몸을 취했었으므로 우리가 지금도 그 존재를 신성한 어머니적 존재로 본다고 해서 그것이 크게 틀렸다고 볼 수도 없고, 또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불교에서 관세음을 <성모관음(聖母觀音)>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아울러 부처 보살들이 위대한 존재들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마치 올려다보기도 힘들다는 듯이 너무 지나치게 신격화 우상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도 과거에 다 인간의 육신을 입은 적이 있었으며, 오랜 윤회환생과 영적인 진화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 오늘날 부처 보살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각자도 앞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그리 될 수 있는 것이고요.그리고 마치 기존의 불교지식만이 옳고 우월하다는 식의 생각 역시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내가 보기엔 불교교리나 경전들도 오랜 세월에 걸쳐 잘못 왜곡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경전이든 최근의 채널링 정보든 그 자체만 가지고 이분법적으로 무조건 옳다 그르다 예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 비유와 상징인 경전의 표현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 역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은 각자의 자유겠지만, 아직 미완성의 중생이면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남에게까지 자기의 개인적 생각을 단정적으로 강요하거나 전파하려는 것은 오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나름의 판단력과 보는 눈이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혜안을 가진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하든 무엇이 진리인가를 알아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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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195:안녕하세요.요즘 분위기를 보면 남북 통일 될때가 가까이 온거 같아요.남북 통일되면 전세계에 영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까요?그리고 남북 통일되면 우리나라 영적으로 급변하면서많이 깨어날까요? 오늘 처음 글 남기지만 여기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운영자님과 여기계신 모든분들 축복드립니다.행복하세요.



A:남북통일은 분단된 지 70년 가까이 된 우리민족이 단순히 국가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 이상의 몇 가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운영자 본인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니 참고 정도만 하기 바랍니다.첫째, 21세기 남북통일은 지구 5색인종의 장손민족이자 천손민족인 한민족의 갈라져 있던 힘이 하나로 통합됨으로써 세계 최강대국이자 지도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한민족 DNA의 우수성은 이미 증명된 바가 있습니다. 6.25 전쟁으로 인한 완전한 페허 상태에서 그 잿더미를 딛고 2차대전 후 세계 10위권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또한 스포츠분야에서도 반쪼가리의 작은 나라와 인구를 갖고도 올림픽에 나가 6~7위권의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인구비례로 따지면 사실상 우리나라가 세계 1위에 해당됩니다. 남북한 성적을 합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한류”라는 문화의 파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신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또한 우리에게는 타민족이 갖지 못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라는 국조 단군의 이타적인 위대한 정신적 사상과 <천부경(天符經)>이 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한민족의 문화와 정신세계는 인류를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입니다.둘째, 남북한과 한반도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이자 마지막 냉전지대로서 지구와 전 인류의 공업(共業)을 짊어진 축소판과도 같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북통일과 상호왕래는 곧 우리민족이 이러한 집단적 카르마의 짐에서 풀려나 가로막혀 있던 지기(地氣)의 통일, 즉 에너지가 통일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갈라져 있던 남북의 힘이 비로소 하나로 될 때, 그 힘의 강도가 3~4배 이상 증대되는 상승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구원할 수 있는 정치와 경제 및 과학, 영성 등의 각 방면에서 뛰어난 인재와 지도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고 인류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과 원리가 등장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이조말의 선각자 강증산 선생에 의해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셋째, 남북통일은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우주의 순환원리에 따라 고대 환인, 환웅시대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던 한민족의 정신문화와 에너지가 원래의 자리인 한민족에게 수렴되어 다시 개화(開花)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그리하여 현재는 말살되고 매장돼 있는 인류의 부모국으로서의 한민족의 고대역사가 본격적으로 세계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대민족 중심의 어둠의 세력은 패퇴하고 세계 모든 국가가 우리민족의 “공존공영(共存共榮)”의 밝은 정신적 지도원리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따르게 될 것입니다. 타인종이나 민족, 국가를 배척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서로 돕고 함께 번영할 수 있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원리는 사실상 5차원 이상의 외계문명권에서 채택하고 있는 우주원리와 동일한 것입니다. 앞으로 남북통일과 함께 전 인류가 순조롭게 이런 단계를 밟게만 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는 세계의 지도국이 되어 지구인류 전체를 하나로 통합시켜 5차원의 문명으로 끌고가는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향후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난관돌파 및 한민족 전체의 대동단결과 전심전력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문:197:북한의 장성택 숙청 과 처형으로 북한정권이 무너질것 같은 예감이드는데요. 정말 궁금한것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으로 태어나는 영혼들은 왜 태어나는걸까요? 제가알기로는 영혼이 환생하기전에 영화 스크린처럼 자기의 미래의 일을 영화처럼 본다는데 김정은으로 태어나는 영혼은 자기가 죽어서 엄청나게 나쁜 카르마를 짊어질것을 알텐데 왜태어나는 걸까요? 김씨일가 뿐만아니라 히틀러, 후세인,오사마 빈라덴 등등의 영혼들도 왜 태어나는 건지 정말 궁금한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모든 영혼이 태어나기 전, 장차 자신의 지상에서의 삶을 통해 청산해야 할 카르마와 성취해야만 할 과업과 숙제를 어느 정도 미리 알고 태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모태로 들어가 육신을 쓰는 순간, (극히 일부 고급령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혼들은 모든 것을 망각하게 됩니다. 영혼이 다시 환생하는 목적은 카르마 청산과 영적인 진화를 위해서이지만, 불가피하게 망각의 위험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처럼 육화한다는 것은 영혼에게 대단히 모험적이고 쉽지 않은 일이며,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전생(前生)조차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출생하여 점차 성장하게 됨에 따라 인간은 그때부터는 오직 오랜 윤회환생을 통해 잠재의식 속에 누적된 습기(習氣), 또는 습성에 의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를 달리말해 “업습(業習)”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과거의 반복적인 행위와 카르마에 의해 길들여져 온 일정한 정신적, 육체적 패턴을 의미합니다. 직선적으로 한 방향으로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그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듯이, 영혼 역시 동일합니다. 다시 말하면, 물리학에서 언급하는 이른바 <관성(慣性)의 법칙>이라는 것이 업습에 의해 영혼에게도 그대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우리는 누구나 과거 생에서부터 오랫동안 해오던 버릇과 습성, 기질, 정신적 성향 및 취향이 있으며, 따라서 이번 생에 와서도 인간은 대개 전생에서의 성격과 기질을 그대로 갖고 역시 과거에 하던 일과 유사한 일을 되풀이하거나, 그런 길을 걷게 마련입니다. 즉 전생에 장사꾼은 이번 생에 와서도 장사계통의 일을 하고, 전생에 수행자나 종교가였던 사람은 이번 생에 와서도 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고 수행자나 성직자가 되기 쉽고, 또한 학자나 정치 권력자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죠.또 전생에 사기꾼이나 도박꾼, 포악한 살인자였던 영혼은 역시 과거에 굳어진 습성에 따라 똑같은 그런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예컨대 권력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살해한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 김정은 같은 영혼들은 전생에서도 자신의 욕망과 권력쟁취를 위해 유사한 그런 저급하고 무자비한 일을 자행하던 인간들이었던 겁니다. 이처럼 영혼은 오랜 기간 환생을 반복하며 자신이 오랫동안 해오던 습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어느 정도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주 극적인 전환의 계기가 없는 한은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소위 “사주팔자(四柱八字)”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주팔자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사람의 전생의 카르마에 의해 정해지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즉 우주 안에 그 무엇도 우연이나 요행수는 없습니다.인간들이 죄를 짓거나 범죄나 악행을 통해 또 다른 부정적 카르마를 쌓을 수밖에 없는 근본원인은 단지 우연이나 속임수, 요행수가 가능하다는 영적인 무지와 착각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형태로든 남에게 베풀 줄 모르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법칙을 제대로 깨달았을 때 누구도 이기적으로 살수 없으며, 그때부터 비로소 영혼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악업으로 인한 반복적인 윤회환생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영적인 자각(自覺) 뿐입니다.마지막으로 만약 누군가 이와 같이 과거생의 업에 의해 사주에 정해진 자신의 운명행로를 일부라도 바꾸고자 한다면, 역시 철저한 자각과 이타행을 바탕으로 부단한 최선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문198:카르마 법칙의 본질에 관하여 말씀해 주세요.

A:고의성이 없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카르마 이전에 우리는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하고 피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하게 했을 경우, 법적으로 “과실치상”이나 “과실치사죄”가 되어 감옥에 가든가, 피해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의 동양그룹 사태 마냥 기업이나 경영주가 잘못된 판단으로 투자자들에게 금전적으로 피해를 끼쳤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법을 적용하기 이전에 만약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우리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감과 미안함, 반성의식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잘못 또는 실수에 대해 법적처벌을 받거나 피해배상을 하고, 또 진정한 자신반성을 하는 이런 경우에는 그 실수로 인한 행위가 별 카르마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의도적인 양심불량자 내지는 양심이 마비된 자이므로 그에게는 거기에 상응한 카르마적 책임이 뒤따를 것입니다. 카르마가 적용되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단순히 외적인 행위보다도 이처럼 우리 내면의 마음상태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외적행위의 동인(動因)은 반드시 먼저 마음에서 생겨나고 시작됩니다. 따라서 카르마의 법칙이 인간에게 배우도록 요구하는 것은 자기행위에 대한 내면의 책임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무책임한 행위, 즉 균형에서 벗어난 행위에는 우주가 필연적으로 그 상실된 균형을 잡고자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카르마적 반작용이 뒤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가정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는 돈을 버는 게 불가능한 경우는 없습니다. 조물주는 인간을 애시당초 그렇게 창조하지도 않았고,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놓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나 정당한 노력과 성실성을 토대로 열심히만 움직인다면 얼마든지 기본적으로 먹고 살게는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가정을 토대로 한 질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한 가지만 더 부연한다면, 카르마를 더 짓지 않기 위해서 자살한다는 식의 가정적 이야기도 절대 합리화되거나 성립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자살 자체가 우주법칙을 어기는 것이므로 이미 무거운 카르마를 짓는 나온 인간적인 짧은 생각들일뿐입니다.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그저 영적무지에서 나온 인간적인 짧은 생각들일뿐입니다.



문199 :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 왈 ㅡ 미녀와 함께 1시간 있으면 10분도 안되게느껴지지만 추녀와 함께면 10분이 한나절 같이 느껴진다.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의 최고봉입니다. 그가 설정하거나깨달은 것을 다른 과학자들은 긴가민가 확인하는 레벨이지요빛 책 56페이지와 그 이하 페이지와 연관시켜서 제안합니다.저는 양자물리학을 좀 배웠습니다. 전문적으로가 아닌 영적인문제 해결을 위해서요. 그래서 원자에서 소립자 정도가 아니라소립자도 또 쪼개 그 이상의 존재가 있으니 소립자 가지고논하는 것은 좀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빛 책에서 예수님은 이것을 알기쉽게 설파하셨습니다.전체적으로 물리학과 영적 문제와 균형있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오니 운영자님이나 독자 여러분 중에 이 글 첫머리의 아인슈타인의 말을 영적인 문제와 결부시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이것이 적절한 답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 생각으로는 불교의 화엄경에서 언급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그 한 가지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3차원 물질계 안의 모든 것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없습니다. 사실 물질계만이 아니라 우주전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유동적으로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일정하게 직선적으로 흐른다고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개념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옳은 것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또 심지어는 시간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아인슈타인이 언급한 ㅡ “미녀와 함께 1시간 있으면 10분도 안되게 느껴지지만 추녀와 함께 있으면 10분이 한나절 같이 느껴진다.”는 말은 주관적 세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이 매우 가변적이고 상대적일 수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이와 비슷하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알다시피 이른바 신선세계에 가서의 잠깐 동안의 놀음시간이 인간세계에서는 도끼자루가 썩을 정도로 긴 시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그쪽세계와 이쪽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이죠. 이것은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반드시 우주에서 일정한 속도로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는 인간의 의식(意識)이 객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그것을 좌우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이런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이것을 수천 년에 전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구절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또한 이를 “만유유심소현(萬有唯心所現)” 혹은 "일체제법 유심소생(一切諸法 唯心所生)"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며,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주관계와 객관계는 본래 둘이 아니며, 정신과 육체, 물질과 비물질이 둘이 아닙니다. 즉 책에서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모든 것은 진동하는 에너지이고 주파수의 차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양자물리학의 실험에서 나타난 대로 우리의 주관적 마음에 의해 객관적 현상이 영향을 받아 거기에 반응하거나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은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살아있다는 중요한 암시입니다. 궁극적으로 우주 전체는 곧 거대한 의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상태에 의해 나의 세계 안에서의 시간의 흐름마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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