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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관련 해설3
  등록자 : 빛을 향하여   날짜 : 2014.09.01   조회수 : 513   다운로드 :


35. 단전 호흡을 혼자서 하는데, 가끔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답: 가슴이 답답하다면 좀 무리하게 호흡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전호흡은 제대로만 수련한다면 건강과 더불어 영적상승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좋은 수련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단학이나 선도계통의 수련자들 가운데는 수련 과정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와 상기증(上氣症)과 같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화(走火)는 상기증이나 비슷한 의미인데, 특히 입마(入魔)라는 것은 "빙의(憑依) 현상"을 뜻합니다. 초보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축기(蓄氣)하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무리하게 호흡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흡은 절대 무리해서는 안되며, 자기의 호흡 길이에 맞춰 자연스럽게 여유를 두고 해야 합니다. 부작용이 나타나려는 조짐이 보이면, 즉시 수련을 중단해야 합니다. 상기(上氣) 증상이 나타나게 되면, 우선 자꾸 입안의 침이 바싹바싹 마르고, 두통이 오거나 불면증 같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입안의 침이 자꾸 마른다는 것은 단전의 화기(火氣)가 머리로 상승해서 수기(水氣)를 증발시키게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와 반대로 정상적으로 수련이 잘 될 때는 입안에 반드시 단침이 고이기 마련이고, 단전이나 발바닥 용천혈(湧泉穴) 쪽이 뜨거워지게 돼 있습니다. 이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원리>에 따라 수기(水氣)가 머리로 상승하고 화기는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위에 열거한 여러 증상들 가운데 어떤 증상이 자기에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잘 살펴본다면 자신이 올바로 제대로 수련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잘못되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수련을 하려면 물론 본인의 의지나 노력도 중요합니다만, 무엇보다 수련할 수 있는 어떤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 인연은 전생(前生)에서 부터 이어져 온 맥이라고 생각되는데, 전생에 수련경력이 전혀 없는 완전 초보자가 현생에서의 수련만으로 높은 경지를 성취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절대 욕심으로 무리한 수련을 해서는 안되며, 혹시라도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람들은 자기는 수련할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평범하게 그냥 열심히 사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수련 부작용이 심할 경우,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되어 일생생활을 제대로 영위도 못하고 인생 자체를 망치는 경우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바르지 않은 사람, 수련목적이 잘못돼 있는 자들, 또 인연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수련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초보자들은 혼자서 독자수련 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일정 기간(6개월-1년) 동안은 앞서 간 지도자의 지도를 받는 게 많은 도움이 되고 위험 부담성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23, 446



36. 질문:1.남의 업보를 약간이나마 대신 갚아주고 용서받을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가능한지요?

2.현생에서 가장 이상적인 수련법은 천배와 이타행과 기수련이 세 가지가 알맞은 조화 같은 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1.남의 카르마(業)를 대신 갚아 준다는 것은 불가합니다. 우주 법칙상 자기의 업은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카르마의 법칙>이라는 것은 영적 진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그 영혼이 배워야 할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전생에 남을 괴롭히거나 도둑질을 많이 했다고 가정합시다. 그 악업에 의해 이번 생에서는 입장이 반대로 바뀌어 내가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물건을 빼앗기는 처지에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리바꿈을 해봄으로써, 비로소 나는 괴롭힘을 당하고 물건을 빼앗긴 사람의 처지를, 즉 내가 피해를 주던 상대방의 입장과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이 나의 업을 대신 한다면, 내가 배워야 할 그러한 교훈의 학습기회를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카르마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경우, 높은 차원의 스승이 제자의 과중한 카르마를 대신 일부 짊어져 주는 경우가 있다고는 합니다. 이것은 제자의 업장이 너무 무거워 도저히 혼자서는 그 업장을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보일 때, 또는 제자가 가진 수련의 장애물을 일부 대신 짊어져 줌으로써 수련에 도움을 주고자 할 때, 그런 케이스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그 제자의 카르마가 스승에게 전이(轉移) 되어 스승이 대신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제자에 대한 스승의 깊은 사랑과 자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죠.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스승이 제자의 영적진화 경로 전체를 꿰뚫어 보는 높은 안목이 있어야만 하며, 제자가 업의 법칙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주 희귀한 일부 케이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남의 카르마에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남의 어려움을 일부 도와주는 이타행(利他行)과 남의 카르마에 대한 근본적 관여는 차이가 있고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허리 굽은 노인들 짐을 좀 들어주었다거나 앞을 못 보는 시각 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고 그것이 상대 카르마에 대한 관여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죠. 이러한 사랑과 자비의 실천 행위는 용인될 수 있고 오히려 권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표현상의 용어를 정확하고 적절하게 선택해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을 기회를 만드는 것도 참다운 참회와 반성을 통해 자기가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남이 대신 그것을 만들어 주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 사람의 영적진화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2.일률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자기에게 맞은 수련법이나 방법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자 개인에게 적합한 수단이나 방법을 찾거나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23, 439



37. 문: 안녕하세요.

게시판을 읽으면서 최근에 올라온 글 중 사주에 관한 글을 보았습니다. 혹시 12운성이라는 것에 대해 아시는지?

저도 알게 된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사주로 사람의 현재, 잠재의식을 말해놓는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고... 설령 이것이 맞다해도 자기가 운명을 개척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운명이라는 것도 자기가 예전 삶에 했던 습관들이 반복되어 나온 것일 뿐..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생에 원치 않던 삶을 살던 사람이 이생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래 글 중 사주로 부터 벗어나기 힘들다는 뉘앙스가 느껴져서 한 번 써봅니다.

답: 물론 인간의 운명은 어느 정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사주팔자 정해진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면, 인간의 노력이라는 게 아무 의미나 가치도 없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12운성이라는 것 하나만 가지고 그 사람의 사주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소위 그런 것들은 중국 당사주(唐四柱)와 비슷한 유형으로 복잡한 사주판단을 아주 단순화시킨 것인데, 이런 것은 거의 맞지 않습니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宿命)과 운명(運命)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숙명은 전생의 업(業)에 의해 이미 결정돼 있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명(命)입니다. 자기가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느냐의 문제와 그 태어난 집안의 부귀여부나 길흉화복, 부모형제가 어떤 사람이라든가 부모덕이나 형제덕의 유무, 자신의 타고난 성별(性別)이라든가, 이런 조건들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선택하거나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사항이 아니지요. 이밖에도 신체의 선천적인 건강상태, 두뇌의 지능지수나 명석함 여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運)의 흐름, 이런 것들도 전생에 자기가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 의해서 이미 결정돼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간적 노력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정해진 그러한 숙명적 조건들의 토대 위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노력도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선천적 체질이 허약한 사람이 열심히 운동하고 섭생을 조심해서 어느 정도는 건강유지를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또 거지 사주를 타고 태어난 자가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어려서부터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물론 최소한 거지 신세는 면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가 타고난 운력(運力)이 지극히 미약하고 전생에 쌓아 놓은 복덕(福德)이 없기 때문에 그가 소위 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간신히 거지 신세만 면할 정도로 하류 생활을 전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인간의 사주와 인간의 운명을 비교해서 조사해본 통계에 의하면, 거의 90% 이상이 자기 사주에서 못 벗어나고 타고난 대로 산다는 내용을 어느 역학 잡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 운명을 개선하려고 지극히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도 많지는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거지 사주를 가진 자들 10명 중의 9명은 그냥 거지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사주팔자(四柱八字)라는 것을 일종의 우연의 산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는 것인데, 이른바 사주가 나쁘다고 할 경우, 어쩌다 재수 없게 나만 안 좋은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 어떤 것도 우연은 없습니다. 따라서 누굴 원망할 필요도 없고, 신세 한탄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정확하게 내가 뿌려 놓은 그대로 내가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주도 인과법(因果法)에 의해 내 스스로 만든 것임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열심히 노력했을 때 자기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한도를 한 20~3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나와는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요. 23, 439.



*39. 운명을 개선하려면?

답: 앞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지만, 자기의 사주(四柱)를 정확하게만 풀어낸다면, 인생을 사는데 많은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주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한 개인의 전생의 카르마(業)에 의해 각자의 사주팔자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윤회환생을 통해서 전생에서부터 해 오던 패턴을 거의 반복하게 됩니다. 따라서 직업이라든가 적성, 취미, 관심분야, 인간관계가 모두 전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과거에 해오던 일을 또 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일부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만약 전생에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현생에서 새롭게 하려 한다던가, 카르마적으로 자신에게 안 맞는 길을 모르는 상태에서 억지로 가려고 했을 경우는 어려움을 겪거나 헛된 시간낭비를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굳이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려 애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안 좋은 운명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물론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기가 지어놓은 카르마를 무시하거나 초월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건대 사주팔자가 안 좋은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선적덕(積善積德)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업이 상쇄되거나 소멸되어 좋은 방향으로 운명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부지런히 땀 흘리며, 정직하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무슨 피라밋이나 히란야 같은 것을 이용한다고 자신의 악업이 저절로 소멸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입니다. 그런 상업적 선전같은 것은 좀 과장된 면이 많이 있으며, 약간의 에너지적 보조효과 정도로만 생각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수호령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보호령, 또는 지도령이라고도 합니다. 주로 그 개인이 하는 일을 지도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윗대의 조상신인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조상신이 아닌 경우는 인간으로 있을 때 비슷한 일을 했던 영(靈)이 와서 수호령 역할을 해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예술가에게는 예술가의 영혼이, 군인에게는 군인이었던 영혼이, 수도자에게는 수도자였던 영혼이 보호령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4, 417



40. 선과 악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답:본래 절대선도 절대 악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3차원의 상대 계에는 분명히 선과 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견해로는 선과 악을 가름할 수 있는 척도는 외형적인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하는 자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르마가 되고 안되고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내가 선의(善意)를 가지고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것이 물론 본의 아니게 남에게 일부 피해를 줄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누군가 피해를 좀 봤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이타적인 선의는 이해되고 용인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카르마(業)로 작용해서 업보를 받는 식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직접적인 행위가 없었음에도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강하게 품는 것만으로도 카르마가 되고 악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예수님 말씀에 "마음속에 음심(淫心)을 품는 것만으로도 이미 간음(姦淫) 했느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매우 증오한다든가, 어떤 강한 욕망을 품는 것만으로도 카르마가 되어 다음 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악이라는 것은 미성숙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악한 자는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남에게 예사로 피해를 주고, 또 심지어는 남을 짓밟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아기나 아이들일 수록에 남에 대한 배려가 없고 자기 밖에 모르듯이, 이처럼 악인의 행위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자기 한 사람의 이익과 욕망충족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영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영적으로 어린 철부지들이고, 망나니들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장해서 성숙한 어른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자타일여(自他一如)의 이치를 깨닫고 이타적인 선한 인간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은 이미 오랜 진화를 거쳐 영적인 성숙단계에 와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25, 403



41. 명상 방법에 관하여 말씀해주세요.

답:인간은 누구나 다 내면에 선(善)과 악(惡)의 양면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지 어느 정도 본인의 이성(理性)으로서 본능적인 욕망들을 자제하고 선(善)을 지향하는 의지와 노력을 해 가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멀쩡한 정상적인 사람도 한 순간의 충동이나 분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면 한 순간에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명상수행은 어느 정도 마음을 닦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단, 명상수행 만으로는 부족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선행이나 봉사를 병행해가면 업장소멸에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행과 봉사는 그리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드린다든가, 무거운 짐 가진 사람 짐을 들어준다던가 하는 것만으로도 큰 선행이나 훌륭한 봉사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가지씩만 실천해 간다면, 점차 운명개선의 효과와 더불어 이타행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명상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또 요가나 기공과 더불어 돈 받고 가르쳐 주는 곳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정신세계원(TEL:747-7033)에서 나오는 <웰빙 라이프> 같은 잡지를 참고하면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서점에 가면 명상법에 관한 책도 여러 종류 나와 있으니 읽어보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명상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가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명상도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명상이란 기본적으로 의식을 한 곳에 붙잡아 맴으로써 혼란스러운 평상시의 마음을 가라앉혀 무념무상의 고요하고 평정한 상태로 들어가려는 노력입니다.

한 가지 소개한다면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간단하지만 좋은 명상법입니다. 조용한 방에 앉아서 자연 그대로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여 주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잡념이 떠오를 것이고, 내면에 억압돼 있던 갖가지 감정이나 욕망들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때문에 끈기가 없는 사람은 명상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40분~1시간 정도 꾸준히 몇 달 이상 노력하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을 평정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만트라(Mantra) 즉 진언(眞言)을 암송하는 것도 좋은 수행법입니다. 예컨대 <옴(Aum)>이나 옴의 변형인 <음> 또는 <옴 마니 반메 훔> 같은 만트라를 외우는 <소리 수련>은 참선(參禪)이나 마음 관조법 보다는 초보자가 하기가 쉽습니다. 의식을 단전(丹田), 즉 아랫배에다 두고 처음에는 소리내어 하다가 어느 정도 숙달되면, 조용히 나즈막하게 속으로 외워도 됩니다. 이 수련의 장점은 빠르게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준다는 것이며, 길을 걸어가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할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25, 399





42. 이타행과 운명 개선의 길을 알고 싶습니다.

답:앞서 있었던 질문과 거의 대동소이한 질문인데, 기존의 답변만 자세히 읽어도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답변을 자꾸 반복하려니 좀 답답한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자기가 처한 현생의 모든 불리한 상황은 결국 자기가 만든 것입니다. 누구 탓을 할 필요도 없고 부모나 조상 원망할 문제도 아닙니다. 이 점을 우선 명확히 인식해야합니다. 이러한 명확한 인식 내지는 각성(覺醒)을 토대로 자신의 악업(惡業)에 의한 업장(業障)을 소멸시켜 자신의 운명을 전환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것은 결코 그리 쉽거나 간단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많은 영혼들이 약간의 어려움에도 좌절하여 악순환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는 윤회환생의 사이클을 돌고 도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일도 공짜로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불운한 운명을 바꾸려면 뼈를 깎는 고난을 극복해야 하고, 때로는 처절할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나약한 영혼들은 약간의 어려움도 극복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퇴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들이 스스로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이런 사람들은 예수도 석가도 하느님도 구원하기가 힘듭니다. 예컨대, 걸음마 처음 배우는 아기가 처음에는 몇 걸음도 못 가서 넘어지기를 반복하지요. 이때 엄마가 아기가 애처럽다고 업어 주기만 하면 아기는 영원히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니기만 해야 합니다. 이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우주의 섭리와 법칙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서 진화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여기에 간섭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 냉엄한 것 같지만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의 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화하지 않으려 하는 존재들은 아마도 언젠가 우주법칙에 의해 자연도태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상은 가능한 한 보다 많은 영혼들을 깨우치고 이끌어 주고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인류의 교사들을 파견해 왔습니다. 그들이 바로 인류 역사상의 많은 성인, 부처, 보살, 기타 선각자,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가르친 핵심은 우리가 다 아는 바 아닙니까? 지구상의 인간은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다 문제가 있고 부족한 가운데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것이죠. 만약 주위에 소외되고 고립되고 은둔해 있는 불쌍한 영혼이 있다면, 먼저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손길을 내밀어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 고마워할 겁니다. 자기 힘으로 서서 걸어야 하되, 누군가의 도움으로 좀 더 걸음을 수월하게 배우는 정도는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는 것이죠. 그게 알다시피 예수, 석가가 가르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아니겠습니까? 이타행이든 참회든, 천배를 하든, 그 모든 노력은 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 모든 노력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업장을 조금씩 녹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업장이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신성의 빛을 밝힐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업장이 많은 사람은 앞길이 업장에 의해 방해받게 되고, 가려는 길이 자꾸 가로막히게 됩니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먼저 업장을 소멸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남에게 부채를 지고 있는 한, 나는 법적으로나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 빚을 모두 갚았을 때만이 채무자 신분에서 벗어나 나는 홀가분한 상태가 되지 않습니까? 이처럼 카르마(業)란 내가 남에게 진 부채와 같습니다. 어차피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안다면 자기 신세 가지고 한탄하거나 자학하거나 누굴 원망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또 삶을 멋대로 낭비하거나, 이기적으로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죄(罪)도 인간이 너무 무지하기에 짓는 것이죠. 이 정도면 아마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25, 388



43. 영혼의 환생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답:영혼이 환생하는 데 있어서 그런 불균형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영계(靈界)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영계란 영혼들이 다음 환생을 위해 머물러서 대기하는 일종의 대기소입니다.

때문에 자신이 들어가기에 마땅한 육신을 기다려야 하므로 환생의 사이클이 영혼들마다 각각 다른 것입니다. 또한 각 영혼들은 자신의 전생의 카르마나 또는 지상에서의 임무나 사명이 제각각 다릅니다. 예컨대 저급령들이야 대충만 맞으면 아무 육신이나 들어가면 되지만, 고급령의 경우는 적합한 부모의 DNA를 갖춘 육신을 찾아야 합니다. 고급령이 저급한 영적의식과 DNA를 가진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기는 힘듭니다. 이런 경우 적합한 인연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어떤 영혼의 경우는 50년이고 100년이고 마땅한 육신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육신 받아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않은 일이고, 영적진화를 할 수 있는 이런 귀중한 기회를 허송세월로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계는 정묘한 에너지의 파동의 세계로 육신이 아닌 영체의 상태로 거주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는 지구에서의 윤회환생 사이클 자체가 점차 끝나게 되니 더 이상은 지구에 환생하지 않는 영혼들이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이 지상에 태어나는 영혼들은 (1)죽음을 통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카르마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거나, (2) 아니면 지상에서 차원상승하기 위해서 이거나, 또는 (3)인간을 돕기 위해 온 스타피플이거나, 셋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26, 377





44.공덕에 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답:현생에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불행을 당하는 것도 다 자기 전생의 카르마(業)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해있거나 가난한 사람일수록 공덕을 쌓기가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범죄에 노출되기가 쉽고, 또 악업을 지어 업장이 무거워지게 되고 다음 생에 더 나쁜 환경에 태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환생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설사 전생에 쌓은 공덕이 있어 현생에서 유복한 환경에 태어나더라도 우리가 재벌들이나 국회의원, 사회저명인사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수시로 감방 드나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런 사람의 복덕은 현생에서 모두 탕진되어 한 번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공덕은 부유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 하는 작은 선행이 큰 공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과부의 헌금"이란 대목이 나옵니다. 사두개파나 바리새파 제사장들과 부자들이 온갖 금은보화를 가져다 보란듯이 헌금하는 가운데 가난한 노파가 부끄러워하며 달랑 은전 한 닢을 헌금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히려 저 노파가 가장 큰 헌금을 했다고 칭찬합니다. 의아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설명하기를, 제사장들과 부자들은 자기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내놓았으나 저 여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다며 그 여인의 공덕이 가장 크다고 답변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공덕은 물질의 액수나 크기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 사람의 정성과 성의에 달린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이 이웃에게 베풀기는 쉬우나 자신도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 남에게 베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환경에서 그것을 실천했을 때 그 사람의 공덕은 부자의 선행보다 몇 십 배 이상 큰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물질은 사실 우주의 것이고 하느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인간의 사유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물질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사는 동물인데, 이는 말 그대로 어리석은 착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죽을 때는 몇 천 억 가진 재벌이든 길거리의 거지든 똑같이 빈손으로 가야합니다. 이처럼 저 세상 갈 때는 누구든 간에 단돈 100원 짜리 동전하나도 가져갈 수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모든 물질은 자신이 잠시 맡아두고 있는 것이고, 인간 각자는 그 물질의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정확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알음귀가 열린다함은 자신의 보호령 또는 수호령, 지도령과 통신이 가능케 됨을 뜻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영감(靈感)형식으로 오거나 텔레파시 형태로 올 수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나거나 어느 정도 수련이 되어 영들의 주파수에 동조능력이 생겨서 파장 수신이 가능해졌을 때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26, 375





45. 세계의 기운이 한반도에 집중되는 이유는?

답:1.우선 대표적인 원인으로서는 풍수지리상 한반도가 지구의 단전(丹田), 즉 기해혈(氣海穴)에 해당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인체에서 단전이 기가 모이는 중심이듯이 한반도가 위치상 지구의 중심 부위이므로 기운이 모이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또 지구의 축(軸)에 해당되는 부분이 충청도 계룡산 근처라는 설(說)도 있지만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천문학상의 이론으로서 특정 천체(天體)의 성기(星氣)가 현재 한반도를 비추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몇 가지 이야기들은 장차 우리나라가 세계 지도국가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언의 토대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될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되며, 미래는 그때 가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쨋든 한반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특수한 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인삼이나 산삼도 세계에서 한반도에서 나온 고려인삼만을 인정해주고 중국산이나 캐나다산, 유럽산은 별로 쳐주질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약효가 한반도에서 나온 제품의 약 6분의 1에서 10분의 1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한반도에서 나온 식물이나 동물들 일 수록에 몸체는 작으면서도 약효나 맛이 다른 나라보다 뛰어납니다. 故 인산 김일훈 선생같은 분도 한반도 상공에는 감로정(甘露精)이라는 특수한 성분이 존재한다고 생전에 언급하신 바가 있지요.

2.제사의 의미는 우선 살아있는 후손이 돌아가신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추모한다는 데 있습니다. 아울러 영혼이 환생하기까지의 기간인 4대(代) 내의 조상신 가운데 혹시라도 천도가 안되 떠도는 영가가 있을 경우, 제삿날 하루라도 음식을 대접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제사는 유교문화권에만 존재하는 훌륭한 미풍양속(美風良俗)입니다.

특히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는 옛부터 조상신명 모시기에 가장 극진한 민족이었습니다. 꼭 제사상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안 차리더라도 간소하게나마 차려 조상을 깊이 기리고 추모하면서 그 생전의 은덕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영계에 있는 조상에게 그 염(念)의 파장이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상신 역시도 지상에 있는 자신의 후손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돌보지 않겠습니까?

조상과 후손은 기적(氣的)인 파장으로 하나로 연결돼 있으므로 조상공덕이 자손에게 미치고, 반대로 자손의 공덕이 조상에게 미칠 수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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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영적 상승의 길에 관하여 말씀해 주세요.

답: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진정으로 과거를 참회한다든가 과오를 씻기 위해 헌신 봉사하는 것은 가치있고 바람직한 것입니다. 앞서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결코 채널링 지식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주지는 못합니다. 지식이나 정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고 일종의 참고자료에 불과한 것이죠.

인간의 이기주의와 에고가 철저히 깨져서 스스로를 밑바닥까지 낮출 수 있는 겸허한 인격이 형성되는 데는 뼈를 깍는 고난의 체험과 오랜 헌신, 봉사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높은 영적 차원에 도달하는 길에는 여러 가지 수련법을 통한 길도 있겠지만, 수련이 아닌 몸으로 직접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이타행, 보살행의 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 자신의 업장을 점차 소멸시키고 아상이 어느 정도 이상 정화되었을 때 비로소 영적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세상에 공짜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영적인 길일 수록에 더욱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몸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와 희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27, 354



49. 창조주와 부처님의 관계는?

답: 앞서의 답변 과정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질문이 올라왔군요. 다음의 설명은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이해하고 있는 한도 내에서 다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신관(神觀)>을 올바로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창조주" 또는 "신"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설정해서 보느냐의 문제인데요. 기존의 기독교나 이슬람교, 또 여타 종교 및 우리나라 민족종교에서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신관은 아다시피 대충 이러합니다. <저 천상에 어떤 하나의 절대적 인격신(人格神)이 있어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했고, 또 이 인간계를 내려다보면서 섭리하고 관여한다> 제가 보기엔 이러한 신관(神觀)은 인류의 의식이 깨어나기 전인 중세시대 이전에 형성된 수준 낮고도 미개한 신관이라는 것입니다. 원시인들이나 미개인들은 <神>이라는 것을 대개 인간을 다스리고 심판하는 두려움의 존재로 상상하기 마련입니다. 구약성경의 <여호와신>이라는 것도 그러한 유대민족의 미개한 관념이 투영되어 형성된 신인 것이죠. 그런데 인류가 영적으로 과학적으로 이 만큼 발전한 21세기 과학문명시대인 지금도 불교를 제외한 상당수의 종교들이 여전히 그러한 왜곡된 창조주신을 신도들에게 계속 가르치고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교에 따라 너희가 믿는 신과 내가 믿는 신이 다르다는 착각과 심지어는 자기네 종교가 믿는 신만이 우월하고 진짜신이라는 지극히 유치한 서로간의 분열과 싸움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 무지몽매한 종교인들에 의해 수천 년간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인류가 창조주라는 존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우주적 신관정립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럼 진정한 창조주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로는 창조주란 결코 기존종교에서 믿고 있듯이 하나의 인격신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존재는 바로 이 우주 자체에 깃들어 있는 거대한 정신(精神), 또는 영(靈), 의식(意識)이며 또한 거대한 힘이고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존재는 모종의 원대한 <법칙과 원리>로서 우주를 움직이면서 천, 지, 인 삼계를 주관하고 운행시키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흔히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어디에나 계시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 자체에 세세히 깃들어 있지 않으면, 무소 부재 할 수가 없지요. 따라서 우리 인간 자체 속에도 그 분의 속성과 성품이 그대로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러 석가모니 부처님은 "불성(佛性)"이라 했고, 그리스도는 "신성(神性)"이라 했습니다.

최근의 발전된 인간의 과학은 우주가 일종의 "홀로그램(Hologram)" 이고 "프랙탈(Fractal)" 원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언급하고 있고, 이는 곧 부처님의 설법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과학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홀로그램>과 <프랙탈> 구조는 "부분 속에 전체의 속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인류를 계도하기 위해 지상에 왔던 모든 선각자, 성인, 각자(覺者)들은 사실 인류에게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고 깨닫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내부에 창조신의 속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으니 우리 각자는 본래 신(神)의 작은 분신(分身)이자 창조주의 몸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세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수양하고, 수도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영성공부를 하는 모든 행위가 잠재된 불성 또는 신성을 일깨워 각자가 부처(佛)가 되고 신(神)이 되자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조주와 부처님의 관계를 질문하셨는데, 이미 설명했듯이 창조주를 하나의 <개체적 인격신>으로 상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창조주는 우주 전체이고 부처님은 개체이고 부분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개체이고 부분이면서도 자신이 본래 전체의 속성을 고스란히 담은 전체의 한 부분이고 또 전체 그 자체이기도 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완성해 전체로 환원시킨 위대한 존재입니다. 동양의 <주역(周易)>은 우주의 생성 원리를 철학적으로 풀이해 놓은 것인데, <무극(無極)>의 개념은 우주 삼라만상의 상대계가 창조되기 이전의 절대 계(太虛, 空)를 상징합니다. 이 절대 계에서 삼라만상의 상대계가 생성되어 나왔으며, <태극(太極)>은 이를 표현한 개념입니다. 상대계가 창조될 때 창조주 의식(意識)이 스스로를 분화(分化)하여 창조를 대행할 주요 하위의식(下位意識)들을 낳았고, 이 하위의식들이 다시 세포분열 하듯이 또 다른 의식체(意識體)들을 낳아, 우주 전역에 흩뿌려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식 체들이 바로 우주 전역에서 각양각색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영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혼들이 <진화법칙>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여 영적완성을 이루었을 때, 각자 누구나 부처(佛)가 되고 신(神)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영혼들은 누구나 존귀한 존재들이며, 미래의 예비적 소창조주(小創造主)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우리 인간들을 <집나온 탕자(蕩子>로 비유했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했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망각한 본래의 신분, 즉 "신(神)의 아들"임을 깨닫고 완성하여 "아버지의 집(無極世界)"으로 귀환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343 (이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개념과 설명은 본론의 영계의 실상과 하느님의 개념에 자세히 설명하였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람---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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