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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돼지몰이론과 빈대론
동아일보 산업부장 천 광암
2015년은 한국 기업사(企業史)에서 큰 의미가 있는
해이다. 현대 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태어 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소판 돈을 들고
야반도주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 한국 최고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
마이자 역사이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은 세계 5위
의 자동차 그룹도 세계 최고의 조선 그룹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이 전 세계에 자랑하는
중후장대 산업[重厚壯大産業=조선, 정유, 철강 산
업을 중후장대산업(重厚壯大産業)이라고 한다. 그
야말로 육중한 장비며 대지(大地)가 필요한 산업이
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산업들이 점차 전자장비로
바뀌면서 중국(中國)을 따돌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로봇(Robot)도 참여하여 특히 용접자동화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세계 모든 시
설들이 첨단화로 치닫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의
중후장대산업은 중후(重厚)함을 그대로 지키면서
장대(壯大)하게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새 아침을
맞는 날이다.---naver에서. 여기서는 중화학 공업
과 규모가 큰 산업의 의미로 쓴 것 같음] 대부분이
불모지로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년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잿빛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건설
업과 조선 업종의 대기업들은 분기당 수 천 억원에
서 최고 2조 원에 달하는 부실을 털어내느라 여념
이 없다.
화학과 유화(油化=석유화학) 업종은 중국 특수(特
需)가 꺼지면서 구조적 불황으로 빠져들 조짐을 보
이고 있다. 투자와 소비 어느 것 하나 온기가 도는
것이 없다. 이처럼 어려운 때이기에 좌절과 포기를
몰랐던 정회장의 일생은 종전보다 훨씬 더 값진 교
훈을 던진다. 1996년 스웨덴의 경제학자들과 정치
인들이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정회장을 추천한 적
이 있다. ‘대학교는커녕 중학교 문턱도 못 밟아본
사람에게 노벨 경제학상이 웬 말이냐’ 고 웃는 사
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생각은 다르다.
정회장의 ‘돼지 몰이론’과 ‘빈대론’은 지금의 한국
의 경제에 어떤 고급 경제이론보다도 훌륭한 해법
을 제시하고 있다. 정회장은 ‘고정관념’과 ‘적당주
의’를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그가 유조선을 가라앉
히는 기막힌 아이디어로 천수만 물막이 공사를 완
성시키고, 미포만 갯벌 사진 한 장으로 그리스에서
초대형 유조선을 수주한 것은, 고정관념에 얽매이
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고정관념이 사람
을 멍청이로 만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고정관념
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해답이 역
(逆) 발상을 강조한 정회장의 ‘돼지 몰이론’이다.
돼지를 우리에서 내몰 때는 앞에서 귀를 잡아당기
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꼬리를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돼지몰이론은 시장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경비절감에만 메달리는 기업들도 귀담아 들어야하
겠지만, 그보다는 정치권이나 정부가 더 뼈아프게
새겨야할 이야기이다.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 법인
세를 올리자거나,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내
부 유보금에 과세를 하자는 발상은 모두 앞에서 귀
를 잡아당기는 행동이다. 다음으로 정회장이 ‘적당
주의’를 배척하기 위하여 평소 강조했던 것은 ‘빈
대론’이다. 빈대론은 정회장이 인천 부두에서 막노
동을 할 때 겪었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정회장
은 잠을 자는 동안 빈대에게 물어뜯기지 않기 위해
갖은 꾀를 낸 끝에, 밥상 다리 4개를 물이 담긴 큰
그릇 4개에 담그고 밥상 위에서 잠을 잤다. 빈대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해자(垓字)가 생긴 셈이
다. 하지만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빈대의 공격이
재개됐다. 빈대들은 밥상 다리를 기어오를 수 없게
되자,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서 사람을 향하여
떨어지는 ‘고공 침투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정
회장은 빈대론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렇게 덧붙였
다. “찾지 않으니까 길이 없는 것이다. 빈대처럼
필사적인 노력을 안 하니까 방법이 안 보이는 것이
다.” 우리 기업들도 더 이상 “투자할 곳이 없다”,
“미래의 먹거리가 안 보인다”고 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내년에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반문하
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해보기는 했어? 빈대만
큼이라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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