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장기 집권론에 끼는 먹구름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기홍

지지난 주 토요일 오전 11시 40분경 삼청동에서 성북동 방향으로 가는데 삼청 터널 수 백 m 앞부터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간신히 삼청 터널을 빠져 나와 보니 삼청각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틀 후 신문을 보다 이유를 알게 됐다. *** 더민주당 간부의 결혼식이 삼청각에서 있었던 것이다. 과거 요정의 대명사였던 삼청각은 예식장 겸 한식당이다. 집권당 의원들과 국무총리, 장관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한다. 처음엔 ‘설마’하며 믿기 힘들었고, 잠시 후 추대표 등 여권 인사들이 주장해온 ‘진보 20년 집권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꿈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 장기집권을 이루고 싶으면 보수의 장기 집권의 꿈이 어떻게 물거품이 됐는지 보아야 한다. 불과 2년 반 전만 해도 자유한국당의 前身인 새누리당은 민주당보다도 지지율이 2배 높았으나 2016년 봄 박근혜 發 공천파동에 이어서 최순실 사태로 초토화 됐다.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당이 죽을 쓴다고 민주당의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보수건 진보건 시대의 발전에 걸맞게 진화해야 한다. 즉 정반합(正反合) 과정처럼 보수(1)→진보(a)→보수(2)→진보(b)로 전개될 때, 합의 위치에 있는 보수 (2)는 보수 (1)보다 진화된 보수이어여 한다. 그러나 (2)의 단계에 해당했던 박근혜, 이명박 정권은 (1)즉 김영삼 정권보다 더 퇴행(退行)한 특질을 보였다. 그 퇴행의 특질을 요약하면 *최고 권력자가 옳다고 하는 목표를 향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합치(合治)•합법적인 절차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세상을 보는 눈이 수십 년 전에 멈춰있는 인물들을 등용한다. *경찰, 검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이 정권의 ••개 역할을 한다. *역사, 교육, 문화 등 국민의 정서적 감성의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등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1987년 민주항쟁 이전의 집권세력과는 다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체화(體化)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을 펼치는 보수여야 했다. 당시 여권에는 민주화에 기여한 인사도 많았지만 독재 시절에도 아무런 고민 없이 승승장구(乘勝長驅)했던 이들로 권력 엘리트(elite)가 충원됐다. 그러면 진보(b)에 해당하는 문제인 정권에서는 앞에 열거한 퇴행의 특질들 가운데 반복된 것은 없을까? 13일 발표된 검찰 간부 인사를 앞두고 전 정부에서 기획•사정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줄사표를 냈다. 새 정부 기획 수사에 앞장선 인물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낙하산도 여전하다. ‘미디어 오늘’ 출신 친노 인사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된 것은 압권(壓卷)이다. 진보 진영의 인재풀(人材 pool)에도 균형감각을 지닌 인재가 많을 텐데, 현대사를 친일파가 득세하고 민중이 탄압받아온 질곡(桎梏)의 역사로만 인식하는 ‘선악 이분법’을 지닌 인사들이 등용된다. 성장과 분배의 두 가치를 고루 체화(體化)한 진보성향의 경제 전문가도 많은데 실물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업들이 글로벌(global) 경쟁에서 어떻게 고군분투 하는지 전혀 모르는 이들이 위원회 등에 들어가 완장을 찬다.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문제인 정권의 내리막은 경제에서 시작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권은 진화한 새로운 진보가 될 여건이 충분했다. 보수 몰락으로 중도 진영의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호조건이다. 그런데 좌 쪽에서도 극단에 있는 자들이 등용된다. 자기들끼리의 끈 때문이다. 실세들의 사람 챙기기, 그리고 집권당 대표의 자녀 결혼식에서 보듯 특별히 긴장해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지도 않은 안이함---. 수평선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먹구름이다. 죄파든 우파든 극단은 생명력이 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