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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토론

  무릉도원
  다시 한 번 정의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정의란 무엇인가.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개인은 자유가 없는 사회는 원치 않으며, 사회는 평등이 없는 삶을 용납지 않는다. 이 갈등을 해소하는 소중한 가치가 정의다. 특히 정치 사회와 경제 생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11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B 파스칼은 정의와 현실관계를 언급하면서 뜻 깊은 글을 남겼다. ‘왜 그대는 나를 죽이려 하는가. 그대는 강 건너 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냉전 시대에는 워싱턴에 사느냐 모스크바에 사느냐가 정치적 정의의 표준이 됐다. 지금도 우리는 서울에 사는가 평양에 사는가에 따라 삶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그것까지는 역사적인 폐습이라고 받아들여도 할 수 없다. 아직도 우리는 같은 사례를 가지고 어느 정권에서 일어났는가를 묻는 때가 있다. 정치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여야의 위치에 따라서 상반된 판단을 내린다. 어느 사회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집단 이기주의와 편가르기에 빠진다. 그 결과는 국민 전체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된다. 심하게 되면 혁명을 앞세우는 투쟁의 원인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정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진정한 의미의 진보나 보수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정의관(正義觀)을 받아들이고 있다. 정의는 더 많은 사람이 자유를 누리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진보 진영은 정의는 평등한 사회를 창출해 내는 방법과 과정의 추진력이라 믿는다. 펑등한 사회가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인 평등의 갈등 속에서 시련과 고통을 치르곤 한다. 현 정부가 출범하고서는 그 정도가 더욱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약속했던 협치는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행정상의 협치도 중하나 자유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평등을 기대했던 것이다. 케나다나 영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그런 수준의 사회 평등의 방향과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170년 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의와 평등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DJ 정부 때는 국민의 다수가 진보 정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현 정부의 경제 사회관은 운동권 학생들이 교과서처럼 믿고 따르던 옛날의 이념적 가치를 정의로 여기는 것 같다. 오래전에는 서울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교통편이 하나뿐이었다. 무궁화 호 기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생기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발전적인 변화는 예상하지 못했다. 같은 기차라고 해도 지금은 고속철도(KTX)가 주역을 맡고 있다. 세계 역사도 그렇다. 170년 동안에 정치는 물론 경제계의 발전적 변화는 예상을 초월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가들은 모두가 세계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러시아가 그랬고, 중국이 같은 길을 택했다. 북한의 실정은 더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들었던 일본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20대에 마르크스를 모르면 바보였으나, 30대까지 믿고 따르는 사람은 더 모자란 바보라는 것이다. 적폐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면 정의가 되고, 야당이 하면 폐습이라는 사고는 위험하다. 적폐를 수술하는 것은 법과 권력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나, 선한 사회질서와 법이 동반되어야 한다. 건강한 사람도 계속 수술만 받으면 환자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권을 잡으면 모든 과거를 적폐로 보았다. 그래서 투쟁과 혁명을 계속했다. 그러는 동안 사회적 전통과 인간의 질서가 병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 문제에는 흑백이나 모순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간만이 실재하는 법이다. 중간 존재를 거부하는 극우나 극좌는 언제나 위험하다. 강 이쪽과 저쪽에서 우리는 옳고 너희는 배제되어야한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세계 역사가 공산주의나 합리주의보다 경험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양극이 아닌 중간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의란 어떤 가치를 염원하는가? 정의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인 평등을 공유하면서도 더 높은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애의 의무와 책임인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행복을 찾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임무를 맡아야한다. 사랑의 질서와 행복을 배제하는 정의는 목적을 상실하는 투쟁의 고통을 남길 수 있다.

                         끝.

[인쇄하기] 2018-07-19 1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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