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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주 변호사는 왜 문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을까?(2)
  

이런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은 문 씨가 국정원 해체에 적어도 소극적으로 동조했음을 의미한다.

 

주한미군철수와 한미동맹 반대에 동조했다.

문재인 씨는 2012125일 인터넷뉴스 통일뉴스 창간 12주년 기념 특별인터뷰에서 주한미군문제와 관련,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도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양해하고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점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김정일이 주한미군을 양해하고 있으므로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동시에 김정일이 요구하면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고려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북한 정권은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일이 없다고 말했으며, 현시점에서 주한미군철수를 적극요구하며,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의 핵심내용의 하나가 주한미군철수이다. 그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하면 문 씨는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한 셈이 된다.

한편, 문 씨가 공동대표의 1인으로 재임했던 부산통일연대는 2004745차 집행위원회에서 주한미군 재배치에 반대 및 한미동맹 강화론 반대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정했다. 부산통일연대의 이러한 결정은 문재인 씨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해체에 대해 간접적으로 동조했음을 시사한다

특정인이 위의 5개 항 중 한 두가지만 행한다면 그를 북한 추종분자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5개 항을 모두 행한다면 그는 북한 추종분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B. 문재인씨는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를 희망하는 공산주의자들을 존경해왔다.

 

문재인 씨는 공산주의자 리영희 씨와 신영복 씨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리영희 씨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 운명에서 대학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리영희 선생이었다.”(운명131)라고 고백했다.

신영복 씨에 대해서 문재인 씨는 평소 크게 존경하는 태도를 취해왔고, 신영복 씨가 사망한 후 2016117일 그의 빈소를 찾아간 문재인 씨는 신영복 선생님은 제게 처음처럼글씨를 주셨다며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선생님의 더불어정신, 공존과 연대의 정신을 늘 간직하면서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씨가 이처럼 크게 존경하는 리영희 씨와 신영복 씨는 어떤 사상을 신봉한 인사들인가? 결론부터 말하지만 매우 단단한 공산주의자들이다. 문 씨의 변호인 측은 리영희씨가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한 바 있고, 신영복씨에 대해서는 인본주의자라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문 씨 변호인 측의 그런 주장은 리영희씨와 신영복씨의 언동을 깊이 고찰해보지 않은데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다. 먼저, 리영희씨의 저서들을 분석해보면 그가 확고한 공산주의자임을 입증해주는 근거들이 매우 많이 발견된다. 리영희씨가 확고한 공산주의자임을 입증해주는 그의 언동 자료는 <참고자료 1>로 별첨한다.

 

다음, 신영복 씨의 글과 인터뷰들을 분석해보면 그가 확고한 공산주의자임을 입증해주는 근거들이 매우 많이 발견된다. 신영복 씨가 확고한 공산주의자임을 입증해주는 자료는 <참고자료2>로 별첨한다.

 

별첨한 자료 12에서 제시된 리영희 씨와 신영복씨의 글이나 발언 내용은 그들이 확고한 공산주의자임을 거듭 입증해준다.

 공산주의자를 존경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자의 공산주의 사상도 존중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C. 문재인 씨는 공산주의 체제/사회에 대한 호감/동경을 표시했다.

 

첫째, 문 씨는 그의 자서전 운명에서 흥남 문씨 집성촌에 살던 부모님과 친척들의 행복은 전쟁으로 끝이났다고 말하며, 전쟁 전 공산주의체제 하에서 문씨 집성촌에서의 부모님과 친척들의 생활이 행복했으며, 그 공산체제 하의 행복은 전쟁(국군의 북진)으로 깨졌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운명, 106>

 

둘째, 문 씨는 리영희 씨의 베트남전에서의 미국 패배 예측 적중에 희열을 느꼈다고 고백, 베트남 전쟁에서 공산세력 승리를 좋아했음을 표출했다. 문 씨는 그에 관해 “[리영희의책] 1, 2부는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배를 예고했다.

3부는 그 예고가 그대로 실현된 것을 현실 속에서 확인하면서 결산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글속에서나마 진실의 승리를 확인하면서, 읽는 나 자신도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운명, 132>라고 말했다. 월남전에서의 미국의 패배 및 월남의 공산화에 대해 희열을 느꼈다는 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셋째, 문 씨가 그의 자서전에서 대학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리영희 선생이었다”(운명, 131)라고 고백하면서 중국 문화혁명에 대한 자기의 부정적 견해를 말하지 않은 것은 문 씨가 중국 문화혁명과 모택동에 대한 리 씨의 찬양에 동조했음을 시사한다.

 

D. 문재인 씨는 과거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미화 찬양했다.

 

첫째, 문재인 씨는 일제 하 공산당계 항일운동가들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며, 특히 김원봉을 찬양해왔다. 문씨는 2012년 이전부터 김원봉에 대한 추모의 정을 표시해왔으며, 2015815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원봉에 대해 일제 경찰이 백범 김구선생보다 더 높은 현상금을 내걸 정도로 항일 투쟁의 치열함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분이라고 찬양하면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김원봉이 어떤 사람인가? 김원봉은 1920년 전후에 공산당 당원이 되었다. 29년에는 조선공산당재건동맹을 조직했다.김원봉이 공산주의운동에 크게 이바지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코민테른식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인 탓으로 언제나 한국공산주의운동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다.

36년 김원봉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족혁명당이 조직되었다. 38년 조선의용대가 발족하고 김원봉이 총사령관으로 선출되었다. 41년 조선의용대의 대부분이 중국공산당 지역으로 이동하여 김원봉은 지휘권을 상실했다. 임시정부의 좌우합작에 참여 44년에는 임시정부의 국무장관 겸 광복군 제1지대장이 되었다.

 


[인쇄하기] 2018-08-26 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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