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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법칙에 순응하는 삶
  

세월호 사태가 발생한지 어언 2달 가까이 지났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세월호 사태의 충격과 여파로 인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무리조차 여전히 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관피아’ ‘해피아같은 관료세계의 조직적 부패나 안전교육부재 및 안전 불감증 등의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또한 생명의 안전을 경시하고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우리사회의 물질주의 역시 그 뿌리가 매우 깊다. 그리고 반드시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대량적인 죽음을 몰고 오는 불행한 사건, 사고는 인간세계에서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그것이 인재(人災)로 인한 사고든, 자연의 천재지변에 의한 재해든, 대규모 재앙과 사고는 과거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정권에서도 늘 일어났고, 또 지금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인간세계와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이런 비극적 재난과 사건들이 그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까지 인류는 이런 끝없는 불행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본다면, 이번 사건에서처럼 그것이 특정의 사람이나 집단의 잘못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여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천재지변은 과거부터 그냥 주기적으로 늘 발생하는 것이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단순히 치부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좀 더 차원 높은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고, 부단히 변화하고 움직이는 에너지의 상생, 상극작용에 의해 어떤 현상들을 물질계에다 표출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결과(현상)가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원인(근원)이 있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과 비극들은 우리 인간이 우주법칙과 원리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물질계와 자연 및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고 작용하고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법칙을 계속해서 어기거나,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삶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항상 우리는 그런 법칙에 의해 다칠 수밖에 없고, 법칙을 위반한 데 대한 반작용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근원적인 원인을 보지 않고 외적 결과만 가지고 여전히 누군가를 탓하거나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인간세계에서의 대량적인 인명사고나 자연재앙들은 그 집단 전체의 증오와 적의(敵意)와 같은 부정적 에너지가 다량 축적돼 있다가 더 이상 압력을 견디지 못할 때 불가피하게 그런 사고와 재난의 형태로 출구를 찾아 방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라도 부정적 에너지를 배출시켜 압력을 해소하지 않으면, 지구 전체의 에너지장이 위태롭게 되어 아예 그 자체가 깨지거나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아마도 이것은 인류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날마다 우리는 희노애락의 갖가지 감정을 통해 수많은 에너지를 지구 에너지장에다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전반적 의식레벨이 낮고 미성숙하다보니 그런 에너지들 가운데 사랑이나 자비심, 감사와 같은 긍정적인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남에 대한 미움과 증오, 분노, 불안, 근심, 두려움, 비난, 짜증, 우울, 공격성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끝없이 생성되는 탁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들은 - <성모의 메시지><빛을 향한 내면의 길>같은 책에서 잘 설명되고 있듯이 - 1차적으로는 개인의 에너지장 속에 쌓이게 되고, 2차적으로는 그 사회나 국가, 마지막에는 지구 전체의 에너지 장 속에 저장되어 단계적으로 인류와 지구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럼에도 인간세계에서 그런 탁한 독성의 에너지들이 저절로 정화되거나 소멸될 길은 없다. 오직 이런 불행한 재난 등을 통한 길외에는 말이다.(우주의 인과법칙에 따라 다른 어떤 우주적 존재들이 이런 부정적 에너지들을 우리 대신 해소해 줄 수가 없다.)

텔로스(2)에 보게 되면, 성 저메인 대사의 메시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즉 주고 받는 것 사이의 균형의 법칙에 따라 지구가 우주로부터 받는 엄청난 사랑과 빛에 상응하여 그 일부라도 인류가 빛을 생성하여 창조주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빛에너지 생성은 고사하고 오히려 이런 어둡고 부정적인 독성 에너지들만을 만들어내어 스스로 그 악영향과 반작용에 의해 고통받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자업자득(自業自得)임에도 불구하고 무지한 인간들은 늘 화살을 외부로 돌려 남을 비난하고 하늘 원망만 한다. 


에너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우주에서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즉 삼라만상 전체가 이처럼 에너지적으로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일어나고, 저것이 있어서 이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하고, 저것이 멸하면 이것이 멸한다.”<연기법(緣起法)>을 설하셨다. 이 가르침은 모든 생명과 만상이 서로 얽혀서 의지해 있고 한 몸처럼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내 가족, 더 나아가 내 국가, 내 민족만이 홀로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다는 생각들은 모두 어리석은 중생들의 착각이고 미망일 뿐이다. 물론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법(因果法)은 개체영혼에서부터 적용되어, 점차 사회, 국가의 형태로 확장되어 나간다. 그러나 영혼이 점차 성장하게 되면, 타인의 불행과 고통이 그들만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연결되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설사 에너지의 깊은 원리를 모르더라도 단순한 한 예로서, 가족 중의 누군가가, 더 나아가 이웃의 누군가가 깊은 고통과 슬픔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음을 볼 때 내 마음만 편하고 즐거울 수 있겠는가?

 

우리는 날마다 긍정 또는 부정의 감정적 에너지를 창조하여 이 사회와 지구에너장 속에다 방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거기에 모종의 기여를 하거나,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근원적 인식을 갖게 될 때, 과연 세월호 사태를 보고 누구만을 탓하고 비난하고 공격할 수 있겠는가? 사실 알고 보면 우리 각자가 다 그 불행한 사태를 불러오는 데 한 몫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더군다나 수행인이나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이런 자기반성과 내적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건대, 가톨릭에서 몇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내 탓이요> 운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며칠 전 신문을 읽다보니 가톨릭의 차동엽 신부님의 인터뷰 기사에 이런 좋은 내용이 있었다.

 

종교인들이 그동안 남에게 돌 던지는 행위를 많이 했다. 사람들은 종교인을 통해 남을 규탄하고 돌멩이 던지는 법을 잘 배웠다. 우리 사회의 정의구현은 주로 그런 식이었다. 반면에 자기반성은 없었다.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교육이 자기성찰보다 사회비판쪽으로 너무 기울어진 측면이 있다.

도시의 얼굴이 뭔가. 구성원들의 얼굴이 모여서 만들어진 모자이크다. 사람들은 도시의 얼굴이 왜 이래?’라며 분노를 쏟아낸다. 그런데 알아야 한다. 자신의 얼굴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걸. 각자가 그걸 바꾸지 않으면 나라의 얼굴이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도 소용이 없다. 결국 나의 얼굴을 바꾸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회를 한꺼번에 바꾸는 쿠데타식 개혁을 믿지 않았다. 하늘나라는 밀알과 같고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다고 하셨다. 하나의 점에서 퍼지는 거다. 누구를 중심으로 퍼지겠나? 나를 중심으로 퍼진다. 그러니 나 자신이 한 점의 누룩이 돼야 한다. (중앙일보)”

 

우리 모두가 깊이 음미해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사회는 이번 사건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언론에서 연일 지적하는 안전관리체계 재정비, 재난 발생시 신속한 구호, 구난 시스템 구축 등은 물론 필요하다. 그럼에도 재난발생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이런 노력은 어디까지나 2차적인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근원적인 곳으로 눈을 돌려 정신적으로 우리 각자의 미성숙한 부정적 감정과 이기주의가 얼마나 더 큰 재앙을 앞으로도 불러올 수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몸뚱이만 어른일 뿐이지 아직 정신적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애들이 너무 많다. 아무 것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 받기만 하고 남을 배려하거나 베풀 줄 모르는 자들, 에고적 교만과 도취에 빠져 겸손함이 없는 자들, 자기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부류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모두 아직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린애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을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 남의 말만 믿고 누군가에 의지해서 구원을 기대하거나, 남이 나를 구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불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영혼 스스로 성장해서 상위차원으로 상승해야 하는 이것 또한 우주의 법칙이다. 고로 우리는 내 자신을 먼저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하고 동시에 남을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와 타인은 둘이 아니며 서로 분리돼 있지 않다. 따라서 남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보편의 법칙을 이해하고 거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뿌린 것은 그것이 물질이든 에너지든 필히 내가 거두어야 한다. 또한 나에게 들어온 것은 언젠가 나가야 하고, 나간 것은 언젠가 또 다시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 우주의 흐름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우주법칙에 순응하는 삶이다. 이 우주 속의 모든 삼라만상은 계속해서 순환하며 움직이고 있고,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단단해 보이는 바위조차도 그 내부에서는 소립자 상태의 진동이 계속되고 있고 생명의 순환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인간은 물질을 혼자 움켜쥐고 언제까지나 소유하려는 착각 속에서 집착과 탐욕에 매달려 있다. 이것은 우주의 자연스런 순환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며 그 흐름을 막고 있는 무지한 행위일 뿐이다. 물이 흐르지 않고 오래 고여 있으면 썩듯이, 이런 행위들은 에너지를 오염시키고 정체현상을 일으켜 반작용을 유발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업(), 즉 카르마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에너지를 오염시키거나 그 흐름을 막아서는 안 되며, 단지 그 에너지가 원활히 흘러 통과하는 하나의 통로 내지는 파이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범사에 감사하고, 사랑하고,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남을 돕고 베푸는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뿌린 씨앗(공덕)이 되어 나중에 더 큰 행복과 풍요로움이 자신에게 흘러들어오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간이 끝없는 고통과 재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처와 그리스도가 지구에 와서 설한 우주원리이며, 모든 영적인 대사들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요체이다.

[인쇄하기] 2014-05-31 14: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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