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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덕으로 해탈한다(2) - 깨달음의 한탕주의를 경계하며
  

그렇기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목표에 점차 도달해가는 중간과정을 무시하고 오직 목표나 결과에만 치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수행방식이나 태도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가 어렵다. 결과가 좋으려면 중간 과정 역시 그만큼 성실하고 충실해야만 한다.

 

카르마를 흔히 업장(業障)”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카르마가 수행자가 가는 길을 가로 막는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카르마가 먼저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 전진하기가 어렵고 깨달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수행자는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는 카르마의 장애물을 먼저 치워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업장소멸의 지름길이 바로 이타행(利他行), 자비행(慈悲行)을 통해 공덕을 짓는 것이다. 이런 부단한 공덕 쌓기가 자신의 부정적 카르마를 신속히 상쇄시킬 것이며, 영적추구의 앞길을 점차 열어줄 것이다. 비단 카르마 청산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수행자는 수행과 함께 공덕짓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본질적으로 우리는 한 개체로서 전체에 기여함이 없이는 영적으로 진화할 수가 없다. 특히 수행자는 필히 전체의 진화와 발전을 위해 봉사하거나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개체와 전체는 연결되어 있고 본래 하나로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이렇게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원리로 구성돼 있으며, 이런 법칙에 의해 엄밀히 작동되고 있다. 그리고 지구보다 진화발전된 외계문명이나 지저문명의 고차원적 존재들은 적어도 이런 법칙과 이치를 깨닫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런 우주원리에 따라 순응하면서 그런 삶을 철저히 실천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낙원 같은 높은 수준의 문명은 바로 그런 자각과 실천의 결과이다.

 

우주의 이치가 이러하거늘, 과연 부모형제와 배우자를 저버리고 제 혼자 열심히 수행하여 비록 운좋게 깨달았다 한들, 만약 그런 상태에서 자기만 극락이나 열반(涅槃)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인가? 이것은 단지 영적인 탈을 쓴 또 다른 형태의 이기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의 이기적 속성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한 소아적 인간 부류들은 애초에 명상이나 참선 열심히 해보아야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좋다. 또한 겸손과 하심을 아직 배우지 못한 이들은 섣불러 수행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본 바탕이 전혀 안된 상태에서의 이런 외적 수행이라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에고를 더욱 더 강화시킬 뿐이고 역효과만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중생을 구하고 헌신하겠다는 큰 서원에서가 아니라, 단지 혼자만의 깨달음과 열반을 위한 무리한 출가와 구도는 부모에게 불효하고 배우자와 형제자매의 가슴에 못을 박음으로써 또 다른 업을 짓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깨달은 존재는 그 이후에는 반드시 속세의 중생들 한 가운데로 다시 돌아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가지고 다른 이들이 깨닫도록 도움으로써 빛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수나 성모, 붓다와 마이트레야와 같은 대사들이 지구를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중생교화와 인류계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전체의 진화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것은 영적으로 높이 각성된 존재들의 주요 특성이다. 그러므로 봉사와 헌신은 또 다른 수행이며, 그것도 매우 중요한 수행이다. 즉 영혼은 이런 봉사와 헌신을 통해 자신의 에고와 이기심을 내려놓고 겸손과 하심을 배우는 중요한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공덕으로 해탈한다는 필자의 의견을 반박하려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이들조차도 공덕의 중요성을 가볍게 보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누구나 불경을 한 번 들여다보기 바란다. 그리고 거기의 부처님 설법에 얼마나 공덕에 관한 언급 내용이 많이 나오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본생경(本生經)>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도 성불(成佛)하기까지 수많은 윤회전생을 통해 때로는 목숨을 바치고 고통을 감내해 가면서 끝임없는 선행과 헌신 및 보시를 계속해온 나머지 그 커다란 공덕에 의해 최종적으로 붓다(佛陀)가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처럼 수행과 공덕짓기는 수행자를 늘 지탱해주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양 다리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일부 어떤 이들은 자기가 공덕을 쌓고 봉사한 것에 대해 스스로 내가 이런 일을 무료로 봉사햅네, 이런 대단한 일을 햅네하고 자랑삼아 공개적으로 떠벌이거나 내세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이런 자기과시나 자발적 광고는 자신이 쌓은 공덕을 스스로 깍아 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이런 사람들에 대해 말하기를,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마태복음 6:17)"라고 표현했다. 바로 그렇게 남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내 내보이는 순간 자기가 쌓은 공덕의 상당부분은 소멸된다는 것을 우매한 중생들은 모른다. 의식수준이 비교적 낮거나 유치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이런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를 한다. 바로 이것은 남들에게 과시하고 우쭐대고 싶은 저급한 에고의 의해 놀아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선행과 공덕은 남에게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야 한다. 또한 가급적 그것을 의식하지 말고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공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쳤고, 부처님 역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자신이 남에게 베푼다는 생각이나 집착 없이 베푸는 것)”를 강조했던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공덕, 즉 음덕(陰德)의 가치는 스스로 드러낸 공덕의 약 10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지어놓은 선근공덕은 인과법(因果法)에 의해 언젠가 몇 배로 불어난 복()의 형태로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복도 결코 우연히나 요행수로 굴어오는 것이 아니라, 지어놓은 사람만이 받게 되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다.

 

이처럼 어차피 우주는 인과법칙에 의해 정확히 움직여지고 있기에 수행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정신과 선행을 통해 공덕짓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급적 타인의 도움이나 보시에 의해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 또한 남에게 빚을 지는 것이고 또 다른 카르마를 짓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수행한답시고 스스로 밥벌이를 하지 않고 타인이나 신도들이 갖다 바치는 시줏돈을 받아 생활한다면, 해탈은 고사하고 계속 축적되는 그 무거운 업장이 더더욱 그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이며, 해탈은 계속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선근공덕행은 이와는 반대로 구도자를 받쳐주는 든든한 토대가 되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그의 앞길을 순순히 열어줌으로써 해탈과 차원상승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법을 토대로 거시적으로 본다면, 이 우주에는 누구를 위한 행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결국 봉사나 헌신도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이다. 즉 이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영적인 진화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전체를 위하는 것이 곧 개체 자신을 위하는 것이며, 이는 곧 자신의 영적진보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자기가 어떤 보시나 봉사를 했다고 해서 그것을 남에게 내세우거나 공개하는 것은 어리석고 치졸하면서도 전혀 무의미한 짓이다. 


우리는 부처님 같은 위대한 분조차도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선근공덕 짓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어놓은 공덕과 복도 언젠가는 소진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복진타락(福盡墮落), 즉 과거에 쌓은 공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복이 다하면, 다시 밑으로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우주의 법칙인 것이다. 

 

() 법정스님의 말씀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짓겠다. 법정 스님 역시 <수심결(修心訣)>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업()이란 한 순간에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한 번 깨달았다고 해서 수백 생의 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깨달음은 수행으로 완성된다. 역사 조사(祖師)와 선지식(善知識)들은 한결같이 깨달음과 함께 행으로 그 모범을 보인 까닭이 거기에 있다.”

깨달은 다음에 행하는 것이 아니다. 행하는 가운데 깨달아가는 것이다.”


[인쇄하기] 2017-05-06 14: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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