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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의 자살과 인생관에 관해
  

 우리나라는 자살 공화국이다. OECD 20개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이 단연 1위로서 자살로 인한 사망은 나이불문하고 불명예스럽게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주소다. 툭하면 일어나는 자살사건은 현실도피의 주요 수단으로서 이용되는데, 이는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유명 연예인, 보통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별반 차이가 없다.

 

1년에 평균적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는 보통 12,000~13,000명에 달하며, 하루에 평균 33명이 자살한다. 그리고 43분마다 1명이 자살로 사망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젊은층과 노년층 자살률이 높은 것이 특징인데, 2시간마다 60대 이상 노인 1명이 자살로 사망하고, 37시간마다 10대 청소년 1명이 자살로 죽는다고 한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9~24세 사이의 청소년층 사망원인 가운데 1위가 바로 자살이라는 것이다.

 

장년층과 노년층의 자살은 어느 정도 살만큼 산 나이에다 인생고나 생활고, 외로움 등이 겹쳐서 올 때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것이므로 그런대로 이해는 간다.(물론 근본적으로는 이런 이유로도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한창 피어나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끊는 청소년층의 자살은 언뜻 쉽게 납득되지 않는 면이 많다. 왜 꿈을 키우고 의욕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왕성하게 성장해가야 할 아이들이 인생의 막다른 곳에 몰린 사람들처럼 자살을 결행하는 것일까?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그 주된 원인은 가정문제로서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억압, 과욕 때문이라고 한다. 즉 특히 고학력 부모일수록 자녀들에 대한 욕심과 기대치가 높다보니 공부를 억지로 강요하고 사생활의 모든 것을 지시하고 간섭하려고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새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와 학원, 집을 오가며 뺑뺑이 돌듯이 온종일 공부와 숙제 및 온갖 부담에 시달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 시간도 별로 없이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숨 막혀 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삶 자체에 대한 절망과 부모를 향한 강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요새 신세대 부모들의 경우는 자식을 지나치게 과보호해서 키우는 사례들도 많다. 이 과정에서 심한 경우, 자식이 엄연히 성인(成人)이 된 나이임에도 여전히 아이처럼 일일이 챙겨주고 지시하거나, 간섭하면서 관리한다. 심지어 극성 부모들은 대학까지 따라가 수강신청까지 대신해주고 군대까지 쫒아 다닌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양산되는 인간형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한 사람의 성인노릇을 못하고 어린애 상태에 머물러 있는 소위 마마 보이들이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는 <피터팬 신드롬>이라고 한다. 이들은 겉으로만 어른일 뿐이지 내면적으로 거의 성숙되지 않아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제 앞가림조차 제대로 못하는 어린애 같은 어른, 정신적 미숙아들을 의미한다. 이들의 또 다른 정신적 주요 특성은 감정적 자제력이 결여돼 있고, 허세가 심하며, 매우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증상을 가진 이들은 늘 부모의 과보호 속에 살아서 거기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어린애처럼 부모가 하나하나 다 챙겨주고 대신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거나, 늘 불안해한다. (심지어는 이런 증후군을 가진 이들이나 사회 부적응자들이 영성계에도 일부 유입되어 존재하는데, 왜냐하면 이런 계통이 현실도피의 출구로 이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대단히 안타깝고도 잘못된 세태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나 대용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자기들의 욕구를 대리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이 많다. 또 지나친 과잉애정으로 인해 한 영혼의 정상적인 영적성숙 과정을 방해하거나 지장을 줌으로써 결국 아이를 아예 망쳐놓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그런 부모들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돼 있는데다  그들 역시 매우 자기중심적이다 보니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이 받는 고통이나 스트레스에는 전혀 무감각하다. 그리고 그런 고통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일부 아이들은 결국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이런 모든 불행과 비극은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의 영적인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에서 비롯된다. 우선 아이들을 망쳐놓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부모라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무지하며, 또 작은 인간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귀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 아이들 역시 무지하다. 아울러 온실 속에서만 자라다 보니 나약해진 정신과 의지박약도 그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런 청소년들의 자살 사례들 중에 극히 일부는 인디고나 크리스탈 같은 일부 귀중한 영혼들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가 없다. 

 

지구상의 삶이란 하늘이 영혼에게 내려준 쉽지 않은 영적성장의 기회이다. 지구에 태어난 모든 영혼들은 그 기회를 얻고자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고, 또 그 귀한 기회를 잡은 행운의 존재들이다. 그리고 지상에 육화된 대부분의 영혼들은 자신의 카르마 청산과 영적진화를 위해 이곳에 와 있다. 그럼에도 육신을 쓰는 순간부터 영혼의 모든 것은 망각되고 대부분은 오로지 물질적 성공과 부(), 명예, 출세, 권력만이 최고라는 세속적 가치관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이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근시안적 망상과 착각 속에서 살게 된다.

 

자식을 자살로 내몰고 있는 부모들과 자살하는 아이들, 양쪽 다 이런 착각과 영적무지의 희생자들이다. 이런 영혼들은 육신을 벗었을 때야 비로소 자신들이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과 귀한 영적성장의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후회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카르마()의 법이라는 우주법칙에 의해서 반드시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엄정한 책임과 댓가를 치러야만 한다.

 

청소년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여! 부탁컨대 부디 절대로 자살하지 말라. 자살은 결코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의 부정적인 카르마만을 더할 뿐이다. 그리고 현생의 괴로움이 죽는다고 해서, 또 임시로 다른 곳으로 도피한다고 해서 절대로 사라지거나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문제든 현생에서 얽힌 문제는 현생에서 풀고 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다시 태어나거나. 또 한 번 똑같은 문제 및 상황과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 우주법칙이다. 즉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나 배워야할 교훈 및 과제를 미뤄놓고는 우주의 그 어디로도 영혼은 도망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다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우주 안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우연한 삶이나 우연한 어떤 상황은 있을 수가 없다.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떤 환경에 태어나느냐는 것도 자신의 전생의 카르마에 의해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 속담에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고통스럽고 스트레스 많은 환경일지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자신의 성장을 위해 배울 것이 있다. 모든 것에는 음과 양이라는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지구라는 행성은 수많은 고통과 고난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현재 지상에 육화해 있는 거의 대다수의 영혼들 모두 그들 나름의 고뇌와 업장을 안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가진대로, 또 그것을 못가진 사람은 못가진대로 말이다. 사실 이곳은 우주의 어느 행성보다도 고통과 어려움이 큰 만큼 많은 존재들이 견뎌내기 힘들어하고, 결국 일부는 중도에 좌절하여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지구는 그런 고난을 인내하고 이겨냈을 때는 단기간에 카르마 청산이 가능하고 동시에 엄청난 영적성장이 가능한 유일한 행성이기도 하다. 아울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본질적으로 고통과 어려움의 극복경험이 없이는 영혼의 영적진화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어려움을 못 견뎌 쉽게 자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고난을 밑거름 삼아 자신을 단련하고 크게 성장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어떻게 해서든 군대 안 가려고 온갖 병역비리를 자행하며 도망쳐 다니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일부러 군대 가서 스스로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싶어 공수부대나 해병대에 몇 번씩 떨어지면서도 계속 지원하는 도전적 영혼들도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이처럼 삶의 모든 것은 내가 그것을 보느냐, 또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인생관(人生觀)의 문제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이 지구라는 세상과 삶을 비관하고 부정하여 단지 죽지 못해 억지로 먹고 살기 위해 움직이고 살아야만 하는 고해(苦海)의 세계로 보느냐, 아니면 낙관하고 긍정하여 내 영혼이 크게 성장하기 위한 고난도의 훈련장 내지는 좋은 수도장(修道場)으로 보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어디까지나 우리 각자의 몫이다.

[인쇄하기] 2014-12-14 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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